빅토르 크라메르가 연출한 태권도쇼 '더 문(The Moon)-은빛 달의 기사들'이 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공연이 기대를 모았던 건 경기도문화의전당(사장 홍사종)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태권도를 소재로 한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상품을 내놓겠다고 공언했기 때문. 이를 위해 유명한 마임극 슬라브 폴루닌의 '스노우쇼' 초연 연출에 참여한 러시아 출신의 빅토르 크라메르를 연출가로 영입하고, 1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하는 등 야심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준비 기간이 촉박해서였을까. 20일 막을 올린 '더 문'은 전체 완성도에서 다소 어설픈 감이 없지 않았다. 작품은 대사가 전혀 없이 1시간 반 동안 풀, 돌, 비, 불, 강, 해, 자아와의 싸움 등 동양의 이미지와 태권도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13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에피소드 속 장면들을 채운 건 크라메르 특유의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무대 연출과 태권도 주요 동작을 응용한 배우들의 움직임이었다. 13개 에피소드에 따라 무대는 축제의 장이 됐다가 깊은 대나무 숲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내 물고기와 개구리가 헤엄치고 백로가 거니는 신비스런 강으로도 바뀌었다. 부채, 기와지붕, 대금 등 한국적 소재와 워터스크린 등을 응용한 무대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화려한 조명, 타악 리듬을 바탕에 깐 동양적 선율의 강한 음악도 신비스런 효과를 더했다. "태권도는 한 편의 시"라는 연출가 크라메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서양인의 파란눈에 비친 동양 세계를 시적인 이미지들로 부각시킨 듯했다. 하지만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고리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맥이 없이 이미지들만 나열돼 아쉬움을 남겼다. 볼거리는 풍부했지만 극장에서 보는 무대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의 개ㆍ폐막식 식전 행사로 열리는 축하공연 같은 느낌이랄까. 높은 경쟁을 뚫고 선발된 배우들의 움직임도 아직까지는 '연기'라기보다는 태권도 '시범'에 가까워 보였다. 이제 첫 공연인 만큼 앞으로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쳐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독특한 예술작품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국립극장 공연은 25일까지. 이어 28-29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으로 옮겨 공연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