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74)의 장편소설 '술라'(들녘)가 번역돼 나왔다. '술라'는 모리슨이 1973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미국 오하이오의 메달리온 읍내 변두리에 자리잡은 이른바 '바닥촌'에 살아온흑인여성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았다. 흑인들의 마을은 읍내의 변두리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지만 '바닥촌'이라불린다. 백인 농부가 흑인 노예에게 힘든 일을 잘해내면 주겠다고 약속한 '한 뙈기의 땅'이 흑인들의 거주지로 자리잡은 곳이다. 세월이 흘러 언덕 아래 백인들의 비옥한 마을은 읍내로 변하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읍내는 열기와 먼지로 자욱해진다. 그에 비해 바닥촌 오두막들을 보호해주는아름드리 나무들은 훌륭한 경관을 연출한다. 당초 언덕배기 땅을 떼어주는 것에 불만스러워하던 흑인 노예에게 백인 농부는"하느님이 내려다보면 저곳은 바닥이야"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촌'은 정말 '천국의 바닥'처럼 보이게 됐다. 소설은 그곳 바닥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어졌다. 국가자살일을 제정하고 연초마다 기괴한 노제를 지내는 광인 샤드렉, 어머니의 손에 한 줌의 재로 스러지는 전쟁 희생자 플럼, 주술사 어머니를 사랑하는 바람둥이 에이잭스등 정상과 광증의 경계를 넘나들고, 도덕과 비도덕 사이를 표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피스 가(家)의 세 여인은 흑인 여성에게 으레 따라다니는인종과 성이라는 이중 억압의 희생자, 중성적 이미지의 주술사 등 고정된 인물상에서 벗어나 있다. 피스 가의 1대 여인 에바는 자신을 떠나간 보이보이를 증오하지만 그를 제외한모든 남자들과 친구나 연인관계를 맺는다. 에바의 딸 한나는 리커스와 사별한 뒤 이웃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데, 그것은 경제적 이유나 보호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성과의 접촉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란 한나의 딸 술라는 성관계란 빈번할수록 좋은 즐거운유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피스 가의 여인들은 남성과의 관계를 오랜 세월 사회 역학구도가 과중하게 부과해온 보호와 억압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의 원초적 동반관계로 회복한다. 그들의 이러한 자기충족적 상태는 사회윤리체제를 쉽사리 무너뜨릴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반도덕적이다. 에바는 아이들을 먹여살릴 보험금을 타내려고 한쪽 다리를 기차에 절단할 만큼 처절한 모성을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아들 플럼을 직접 불태워 죽일 만큼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이다. 한나는 남편과 사별한 뒤 매일매일 새로운 자극을 찾는 쾌락주의자이고, 술라는자아성취를 위해 후손을 거부할 뿐 아니라 에바를 양로원에 격리시켜 조상과의 관계도 단절한다. 작가는 지나친 자기애 때문에 공동체에서 끝까지 배척받는 술라를 통해 흑인이나 여성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미국 오하이오 주의 로레인 태생인 토니 모리슨은 역사와 신화, 세속적인 것과환상적인 것을 이음새 없이 매끄러운 한 편의 음악으로 엮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다. 1988년 '빌러비드'로 퓰리처상, 1993년 '재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애주 옮김. 232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