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조각을 이끈 김종영(1915-1982) 탄생90주년을 맞아 대규모 회고전이 덕수궁미술관과 김종영미술관, 갤러리 원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덕수궁미술관에는 대리석과 목조, 청동, 철, 석고 조각 80여 점과 드로잉 60여점, 작가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사진자료와 수업노트, 사진기 등이 함께 전시됐다. 김종영미술관은 '다ㆍ경ㆍ다ㆍ감'이란 주제로 풍경 드로잉 작품들을, 갤러리 원은 정물 드로잉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종영은 김경승(1915-1992), 윤효중(1917-1967), 김정숙(1917-1991) 등과 더불어 한국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배운 그는 해방 직전 귀국해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창작과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순수조형의 본질을 단순 명쾌한 형태로 구현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며 이를 작가는 생전에 불각(不刻)의 미로 요약했다. 불각의 미는 물질에 대한 개입과 변형을 자제하고 재료의 성질을 존중하면서 천연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 자연과 인체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얻어진 그의 작품들에는자연과 생명에 대한 은근한 예찬이 담겨 있다. 이런 때문인지 최은주 덕수궁미술관 관장은 전시장에 작품들을 설치하면서 가슴에 포근히 안기는 볼륨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추상조각이라고는 하지만 나무와 잎사귀나 새, 사람의 얼굴과 인체 등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에 추상은 난해하다는 선입견으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Work80-7'이란 작품은 누군가의 손때가 묻었을 나무 맷돌 아랫짝 위에 맷돌 윗짝의 가운데를 파내어 직각으로 세워놓은 구성에서 재미가 느껴지고 나무와 대리석자각상이나 인물상들에서는 최소한의 손질만으로도 표면의 잔 물결 같은 느낌을 끌어낸 장인의 솜씨를 엿볼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인체나 풍경, 정물 드로잉을 함께 감상하다 보면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를 강조한 작가가 얼마나 공간적 조형 탐구에 몰두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조각 작품들의 뒷면에 눈길을 주는 것도 좋은 감상법. 한편 그의 탄생 90년을 기념해 드로잉을 곁들인 수상집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열화당)도 출간했다. 83년 출간된 책에 새로 찾은 글들을 보탠 이 책은 작가의 지사적 면모를 여실히보여준다. "존재는 바로 저항력", "진정한 관중은 바로 자신이다", "부지런하고 정직한 것은 예술가와 농부의 미덕이다", "인생은 기다리는 것, 기다리는 것은 답답한 것","소위 전위예술은 타락이란 오명을 쓰면서도 인간의 정체를 밝히고 모든 허위와 가면을 고발하고 인간 본연의 성정에 호소하는 그 행동이야말로 진정 예술이고 창작이아니겠는가"라는 경구와 채찍은 다시 곱씹어도 준엄하다. 박갑성 전 서울대 교수가 소개하는 에피소드 한 토막. 부산 피난생활을 접고 환도한 다음 대학공동관사에서 불편하게 살던 시절 관사에서 동거하던 모 대학교수가 공동으로 사용하던 창고를 독점할 생각에서 아무 말도없이 자물통을 채운 일이 있었다.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도 남을 일이지만 작가는 아무 말도 없이 시장에 가서 더큰 자물통을 사오라고 해서 나란히 채웠더니 잠시후 자물통이 풀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혈안이야 혈안!"하면서 혀를 찼다는 일화는 이해타산에 염치마저 팽개친 세태를꼬집는 선문답같다. 고고한 선비의 성품을 간직했기에 생전에 남긴 공공미술작품은 몇 점에 불과하고 유족들도 170여 점의 조각과 3천여 점의 드로잉을 오롯이 간직해왔다. 덕수궁미술관(☎02-2022-0640)과 평창동의 김종영미술관(☎02-3217-6484)전시는5월 15일까지, 청담동의 갤러리 원(02-514-3439) 전시는 3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서울=연합뉴스) 류창석 기자 kerbero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