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TV 드라마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이동건(25)이 여세를 몰아 영화로 옮겨왔다. `B형 남자친구'. 그는 이 영화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다. 혈액형을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로 끌어들인 이 영화에서 그는 항간에 나돌고 있는 B형 남자에 대한 온갖 편견을 고스란히 끌어안았다. `파리의 연인'의 `수혁'을 상상한다면 관람 전 청심환한알은 꼭 복용할 것. 수혁은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쩨쩨하고 뻔뻔하고자기 멋대로인 `영빈'이 유들유들하게 서 있다. "수혁을 이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수혁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한발자국 물러나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파리의 연인'이 뜨니까 로맨틱 코미디 시나리오만 15편이 들어오더란다. `B형 남자친구'의 영빈은 그중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 주저없이 선택했다. ▲악으로 버텼다 `B형 남자친구'는 그의 스크린 데뷔작은 아니다. 김민종 윤다훈 주연의 `패밀리'에서 이미 얼굴을 내민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연이자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는 오기로 버텼다. 1998년 가수로 데뷔한 후 2003년까지 B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이다. "정말 악으로 여기까지 왔다. 음악으로도 연기로도 인정받지 못하던 나였다. 솔직히 연기에 대한 애정에 앞서 악으로 버텼다. 기분? 이제 내가 이겼구나 그런 기분이 들었다." 2002년 MBC `네 멋대로 해라'로 주목받은 그는 `상두야 학교가자' `낭랑18세'를거쳐 마침내 `파리의 연인'을 만나면서 대박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1년 넘게 붙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달려온 느낌이다. 오죽하면 심적으로 쓰러졌겠는가." 하지만 성취의 순간에 느끼는 짜릿함은 계속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낭랑18세'나 `파리의 연인'을 끝낼 때는 너무 짜릿했다. 무엇보다 감격적일만큼 짜릿했던 것은 시상식 무대에 선 것이었다." 그는 연말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특별기획부문 남자 연기자상을 거머쥐었다. 가수 은퇴를 선언하고 연기에 승부수를 띄운 후 처음으로 손에 쥔 훈장이었다. ▲연기를 생계로 할 생각은 없다. 그는 요즘 안팎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 "변화라…. 하나 있다면 사람이 차가워졌다. 잘 되서가 아니라 너무 바쁘니까 스태프의 작은 실수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를 그냥 못 넘어간다.예전 같으면 웃으며 넘어갈 일이었을텐데…. 그게 좀 아쉽다.하지만 좀 쉬면 금세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B형 남자친구'만 해도 벅찼을 시간에 드라마 `유리화'까지 욕심을 내는 바람에그는 지난 두세달 간 녹다운됐다. 연료 완전 소진. 그래서 웬만하면 올 한해는 푹쉴 생각이다. 이동건은 "가수는 다시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연기는 무엇일까. "연기는 `예술'이다. 그러니까 연기가 `일'이 되서는 안된다. 생계를 위해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전에 그만둘 것이다. 연기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때 하고 싶다." `실제 생계가 되면 어떡할거냐'고 되물었더니 "아, 사지 멀쩡한 젊은 놈인데 뭔들 못하겠냐"고 곧바로 돌아왔다. "난 단 한번도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 또 누구를 따라해본 적도 없다. 오로지 혼자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단점이라면 연기에 있어서는 고집이 심해서아집이 될 정도라는 것이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융통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스타가 아니다. 땀 흘려 맺은 결실, 부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