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드라마'가 유행의 중심에 서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거나 젊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드라마의 눈에띄는 공통점중 하나는 주인공의 미묘한 감정선을 치밀하게 파고든다는 것. 작년 초 `발리에서 생긴 일'부터 `봄날'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들은 누가 누구와 사랑에 빠져 어떻게 연결되느냐 보다는 사랑에 빠져드는 커플의내면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고현정의 컴백작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던 SBS TV `봄날'(극본 김규완, 연출김종혁)은 방영 이후 고현정이라는 이슈 보다는 세 주인공의 애절한 감정이 충분히 설명되며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서고 있다. 고은호(지진희 분)를 향한 정은(고현정)의 마음과 `형의 여자' 정은을 마음에두게 된 고은섭(조인성)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 사건 중심 보다는 사건에 응대하는 심리 묘사 중심으로 이뤄진다. `피아노'에서 인간미가 넘치는 드라마를 보여줬던 김규완 작가와 한 컷 한 컷마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담아내는 김종혁 PD의 호흡이 연기자들의 호연으로 탄력받고 있는 것. 이같은 주인공들의 심리를 좇아가는 드라마의 유행은 작년 `발리에서 생긴 일'부터 시작됐다. SBS TV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주인공 수정(하지원)은 기존 여주인공 캐릭터에선 보기 힘든 인물이었다. 재민(조인성), 인욱(소지섭)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가 다르지만 수정에게는 두 남자의 사랑이 모두 필요했다.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세 주인공의 감정선이 치밀하게 묘사돼 시청자들이 그들의 사랑에 함께 빠져들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정면으로 풀어낸 SBS TV `파리의 연인'도 마찬가지. 전형적인 캐릭터가 결코 스테레오타입화 되지 않았던 것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지키는 순수한 연인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 종영 후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대해 "태영(김정은)의 한기주(박신양)에 대한 사랑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보통 평범한 여자 또는남자들도 자신의 사랑에 확신을 갖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 그 감정을 그렸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무-채 커플'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던 KBS 2TV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역시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충실하게 따라갔다. 남자 주인공 무혁(소지섭)의 죽음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무혁과 은채(임수정)의 사랑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충실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사랑에 빠져가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밝은 톤으로 터치했던 MBC TV `단팥빵'도 마니아층에서는 확실한 지지를 받았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긴 했지만 배우가 갖고 있는 능력 이상의 것을 뽑아내면서 배우도 더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드라마도 뜨는 `윈-윈' 효과를 거뒀다. 이와 달리 스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사건 중심으로 풀어갔던 `황태자의 첫사랑',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나 `슬픈 연가' 등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열혈 네티즌들의 가세도 심리 드라마 유행에 일조하고 있다.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전형으로 짜여진 구태의연한 드라마에는 네티즌들이 끼어들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다. 드라마를 이용한 편집 동영상, 새롭게 내용을 각색하는 능력이 있는 네티즌들은주인공의 감정이 이입된 상태에서 시청소감을 절절히 풀어낸다. 이는 같은 드라마나배우를 좋아하는 시청층의 `단결'을 끄집어내는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SBS 드라마국 문정수 책임프로듀서는 "`봄날'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주인공들의 심리에 빨려들어간다.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