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중경삼림''화양연화' 등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는 탐미적인 영상으로 사랑의 상처를 담아낸 수작들이다.

그의 신작 '2046'은 '화양연화'에서 모티프를 빌려 과거와 미래로 시공을 확대해 사랑의 후유증을 포착하고 있다.

대사는 부수적이며 주제는 화려한 이미지와 음악에 실려 전달된다.
[새영화] 왕자웨이 감독 '2046'

'2046'은 '화양연화'에서 주인공 양차오웨이와 장만위가 만났던 호텔 객실 번호다.

이 영화에서는 양차오웨이가 쓰는 미래소설의 시대 배경이자 양차오웨이와 관계를 맺는 장쯔이가 투숙한 방 번호이기도 하다.

작가 초우 역의 양차오웨이는 '화양연화'의 차우와 사실상 동일인이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초우는 사랑의 상실을 경험한 뒤 진지함을 잃고 플레이보이가 됐다.

그와 그의 여인들은 사랑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콜걸 바이링(장쯔이)은 초우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일방적인 사랑에 대한 은유이고 호텔 주인의 딸 왕징웬(왕페이)은 사랑보다는 우정에 가까운 관계다.

또한 도박사

수리첸(궁리)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사랑에 대한 상징이다.

초우가 쓰고 있는 미래소설의 주인공들은 잊혀진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장면은 '화양연화'의 양차오웨이가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사랑의 추억을 반추하는 마지막 장면을 미래로 옮긴 것이다.

등장 인물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갈망,너무 늦게 찾아온 행복이다.

초우의 도움으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결혼에 이르는 왕징웬과 일본 남자 커플도 갈등과 번민에 시달릴 뿐 행복감은 전혀 없다.

두 사람의 결혼도 화면 밖에서 이뤄진다.

왕 감독은 여기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본질은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이링과 초우의 연애를 담은 도입부에서는 화면 가장자리에 두 주인공을 배치해 불안한 미래를 예고했다.

각 에피소드들은 연속성을 잃은 편집 양식으로 제시된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표현한 우메바야시의 주제곡,장쯔이의 발랄함을 드러내는 라틴 뮤직,비장감이 넘치는 벨리니 오페라,멜랑콜리한 내킹콜의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음악은 대사를 대신할 뿐더러 관객의 상상까지 자극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고 있다.

15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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