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머니가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삶의 고향이며, 지친 생의 안식처다. 어머니들의 삶을 연기하는 건 그래서 쉽지 않다.


중견 탤런트 김해숙이 새로운 '어머니상'을 연기하는 배우로 관객에게 스며들고있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어머니처럼 그의 연기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은근한 빛을 발하며 작품 속에 녹아든다.


그는 8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형'에서 공부는 잘 하지만 언청이로 태어난 큰 아들 신하균과 싸움을 잘하지만 남편처럼 든든한 작은 아들 원빈, 두 아들을 키우며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홀어머니 역을 맡았다.


또 16일 방영할 KBS 2TV 주말드라마 '부모님 전상서'(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에서도 소녀 같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남편과 자식에겐 강인한 어머니로 등장한다.


물론 이미 KBS 2TV '오!필승 봉순영'(극본 강은경, 연출 지영수)에서 그는 남편역의 이정길과 닭살스러운 애정 표현을 서슴지 않는 애교만점의, 그러나 생활력 강한 어머니로 출연 중이다.


영화 시사회 참석과 드라마 촬영 등으로 사흘 동안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는 그를 6일 만났다.


김해숙은 "아직도 새 작품에 들어가면 한 달 정도는 긴장해서 몸과마음이 힘들다"고 전했다.


우선 영화 '우리형'부터 말을 꺼냈다.


"시나리오 다섯 장을 넘기면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한동안 한국영화가 젊은이들 중심으로 제작됐는데,'인어공주' '가족'이나 '우리형'같이 중견배우들이 맘놓고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이 제작되고 있어 기분이 좋네요."


'우리형'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진짜 우리네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들은 못난 자식일수록 오히려 더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원빈의 캐릭터를 보면서 '아, 자식들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어머니와 두 아들의 정겨운 모습이 촬영하는 내내 가슴 깊이와닿았던 작품"이라 말한다.


두 아들의 고향이기에, 두 아들이 겪는 갈등의 근원이기에 중심을 잡는데 애썼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눈물.


"난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데, 감독이 절대울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우리형'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마치 영화계가 '지구를 지켜라'로 백윤식이라는 걸출한 중견 배우를 건졌듯이 김해숙이란 배우를 조명하게 한다.


연기 잘 하는 신하균, 정말 열심히 하는 원빈 등 두 후배와 함께 할 수 있어서좋은 기억만 남는 작품이라고도 했다.


'부모님 전상서'로 들어가보자.


"김수현 선생님이 대본 연습하는 날 '시청률과상관없이 사명감을 갖고 쓰는 작품이다. 내 나이가 돼서야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으니 여러분들도 사명감을 갖고 연기해달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첫 장을 딱 펴는 순간'아니, 이런 엄마도 있나'라는 생각이 들며 앞이 캄캄해졌어요."


그는 김희애의 친정 엄마로 등장한다. MBC 공채 7기로 데뷔했으니 연기 경력 25년째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고, 보지 못한 캐릭터였다.


"마당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래 부르다 자식의 여자친구 앞에서 이를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어머니로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이렇듯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했다. 가슴 속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 '가을동화' 이후 그는 숱한 어머니 연기를 해왔다. 그럼에도 그의 연기는 모두 달랐다.


"행운인지, 겹치기 출연을 할 때가 있는데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각해주시더라구요. 그만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는 거죠. 세상의 어머니가 다 다른모습이니."


그는 개인적으로 김영애와 고두심 '언니'를 절반씩 닮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영애 언니의 여성스러우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연기와 두심 언니의 흔들리지않는 선 굵은 연기를 절반씩만 닮았으면 좋겠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며 한두 작품으로 스타가 되자 연기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몇몇 후배들의 행태가 대비됐다.

후배들과 척척 호흡을 맞추는 비결을 물었다.


"자식으로 나오는 후배들에게 진짜 사랑을 느껴요. 남녀 주인공간에도 진짜 사랑의 감정이 생겨야 하는데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진한 애정으로 묶인 부모 자식간에 사랑이 묻어나지 않으면 안 되죠.그래서 전 제가 먼저 후배들에게 애교 부리고, 밥 사줘가며 친해지려고 합니다."


긴 세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서서히 빛을 발하는 배우의 힘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