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균(78)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일제시대 전형적인 식민지 지식인으로 살다간 아버지 나경석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고모 나혜석의 삶을 중심으로 그 당시 지식인 사회의 모습을 그린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황소자리刊)을 펴냈다. 나 교수는 친일진상 규명을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있는 가운데 나온 이 책에서 가족사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면서 아버지, 고모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던 당시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나 교수의 조부 나정기는 수원서 분천까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가도 될 정도로부자였다. 유복하게자란 나 교수의 아버지 나경석은 한일합병이 되던 해인 1910년스무 살의 나이로 일본에 유학을 떠난다. 이 때부터 아버지의 험난한 인생경로가 시작된다. 나경석을 위시한 당대의 많은 일본 유학생 청년들은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책에서 저자는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불태우던 아버지가 귀국해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다 좌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천부적 예술 감성과 재능을 갖췄지만 여자로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간 고모 나혜석에대한 기억, 대학시절 영어 과외를 지도해주기도 했던 춘원 이광수와의 남다른 인연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 일제시대를 산 사람 치고 어떤 의미로든 친일적인 언동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옥사한 사람 말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아니었다"(232쪽)는 대목에서 드러나듯 암울한 시대를 살다간 지식인들에 대한 연민어린 시선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버지 나경석은 일제말기에 이미 정치활동에서 은퇴한 뒤라 조선총독부의 주목대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친일 행위를 강요당하지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각별히 가까웠던 친구인 이광수를 비롯해 최남선, 송진우, 장덕수, 김활란 등 유명 인사들이 전쟁말기에 일본에 대한 충성과 학도병 지원을 권장하는 글을 발표하기를 강요당하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 통치 기간이 길어지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유명인사들은 날마다 다그치는 총독부의 압력 앞에서 친일을 하느냐 아니면 매장되느냐하는 실존적 선택을 강요당했다"며 "춘원 이광수, 고우 최린, 육당 최남선 등 친일파의 거두로 지목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수동적인 태세를 벗어나 차라리 능동적이 되자, 어차피 일본 밑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라면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겨레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반일운동의 빛나는 기수였던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민족 앞에 나서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었을까 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일신의 안전이나 영달을 위해서만 그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략)결국 그들은 피해만 가중되는 정면대립이 아닌 현실적 투쟁 논리를 택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론이 정당하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 저자는 이 책을 내게 된 것과 관련해 서문에서 "이 책에서 나는 솔직한 우리의자화상을 그려보려고 시도했다. 우리의 잘못, 우리의 못난 점, 우리의 실패를 비판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나라에 대한 걱정과 애정의 소치이다"고 말했다. 276쪽. 1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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