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은 인간의 애욕에 의해 초래된 비극이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자국으로 데려오자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동맹국들이 침공하면서 발발했다. 볼프강 피터슨 감독의 전쟁 액션 '트로이'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바탕으로 트로이전쟁의 큰 줄기를 담아낸 영화다. 'U보트'와 '퍼펙트 스톰' 등 거친 남성들의 이야기를 능란하게 들려줬던 그는 이번에 박력 있는 액션물을 창조했다. 하지만 10년간이나 지속된 트로이전쟁에는 숱한 음모와 배신,모험 등이 섞여 있지만 이 작품은 전쟁을 지극히 단선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인물 해석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헬레네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서양사에서 팜므파탈(요부)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트로이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파리스가 전사한 뒤 금세 재혼했으며 첫 남편과 공모해 재혼한 남편마저 제거하고 말년을 평안하게 보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무고한 트로이인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데 대한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여인으로만 그려진다. 현대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일 수도 있으나 역사를 재현했다면 적어도 그녀의 악마성을 암시적으로라도 표현했어야 옳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킬레스와 헥토르,트로이 왕 등이 전형성을 벗어난 입체적 캐릭터로 표현된 것은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용장' 아킬레스는 때로는 야만스럽지만 연인 앞에서는 양순하다. '덕장' 헥토르는 사려깊고 지혜로우나 결국 패전자가 된다. 아킬레스 역의 브래드 피트를 비롯 에릭 바나(헥토르), 올란드 블룸(파리스),피터 오툴(트로이 왕) 등의 스타들도 제 몫을 다했다. 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한 전투 장면들은 장대한 스케일로 연출됐다. 그러나 컴퓨터 그래픽을 복제해 사용한 탓에 일부 전함과 병사들이 다른 장면에서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게 눈에 거슬린다. 21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