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술가들은 너무 도식화되고 물질화된 것 같아요. 시대가 경박해지고 예술이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게 안타까워 예술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습니다." 소설가 강석경씨(53)가 최근 내놓은 장편소설 '미불(米佛)'(민음사)은 죽음을 앞둔 노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을 통해 예술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미불'이란 법명을 가진 노화가 이평조는 수묵 중심의 기존 동양화를 거부하고 색채와 구도로써 한국화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의 곁에는 진아라는 자유분방한 젊은 여자가 작품의 모델이자 동거녀로 머물고 있다. 진아는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돈만 밝히는 속물이지만 노화가에게는 귀엽고 매혹적인 여자로 비쳐진다. 미불은 자신의 딸보다 두 살이나 어린 진아와 성(性)에 탐닉하다가 어느날 삼십년 넘게 술과 객기로만 세월을 허비했다고 느끼고 인도로 떠난다. 그곳에서 성(聖)과 속(俗),미(美)와 추(醜),완전과 불완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귀국한 그는 '인도귀국전' 등의 전시회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암진단을 받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산소송에 휘말린다. 진아가 그동안 동거한 데 따른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화실에 들이닥쳐 모든 작품에 가압류 딱지를 붙이는 집달리와 진아,그리고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화가는 자신이 토한 피를 붓으로 찍어 마지막 그림을 그려 나간다. 온몸을 불사르며 마지막 순간까지 화폭을 고집했던 노화가의 삶은 예술의 본질이 목숨을 거는 치명적인 열정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삶과 예술에 내재된 원초적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해 에로티시즘을 도입했다"면서 "노화가의 동반자를 속되고 추하게 그린 것은 추한 것에서 아름다운 것으로,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것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야말로 예술이 추구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