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현령씨가 4년전 작고한 남편 허규(연극연출가.전 국립극장장)씨에 대한 그리움을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냈다. 박씨의 일곱번째 시집 「대청마루에 북을 두고」(경원미디어 刊)는 36년간의 결혼생활 뒤에 다가온 남편의 부재와 여기서 비롯된 외로움, 생전에 북(鼓)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남편에 대한 갖가지 추억 등을 43편의 시에 담았다. "한달에 한번씩 은행에 가면/그가 거기에 살아 있다/은행원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내가 그의 통장에/신용카드 쓴 값을 입금시킨다"('한달에 한번 은행에 가면'중)거나 "매달 그의 이름으로/홈쇼핑 카탈로그가 배달되어온다."('홈쇼핑 고객명단속에서는' 중)는 표현처럼 남편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박씨의 삶 속에 살아있다. 박씨는 "장애자협회에서, 무슨무슨 축제기획사에서, 생식동호회에서, 서적외판원에게서" 매일 남편을 찾는 전화가 걸려오지만 "외출하셨어요"('빈방 2' 중)라고태연하게 대답하기도 한다. 시집에는 "드디어 의사가 말한다./어디선가 막혔다고,/막힌 곳을 빨리 뚫어주지않으면/죽음의 나라 문이 열리고/그곳에 등록하러 가야 한다고."('죽음의 나라 등록'중)라거나 "그가 물소리를 내고 약 먹는 것으로/그가 살아있음을 감사하면서'('그의방 2' 중)라거나 "히말라야 계곡의 백사 두 마리를 구해왔었고 우리는 기꺼이 그 백사를 구입했다."('그의 이야기 1' 중)처럼 당뇨와 혈관장애 등으로 투병하던 남편의간병기를 기록한 시편도 적지 않다. 왕궁수문장 교대식이나 거리축제 상감마마 행차 등 남편이 세상에 남겨놓은 축제를 비롯해 연극 '물도리동' '다시라기'에 얽힌 이야기, 실험극장과 민예극장 등남편이 창립하거나 참여했던 극단활동 등은 산문시 형태로 적어놓았다. 네 편의 연작시 '둥둥 낙랑둥'은 서울올림픽 때 '북의 대합주'라는 작품의 산파역할을 했던 남편의 북에 대한 사랑과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작고한 남편에 바치는 '봉헌 시집'이지만 시인의 고독과 실존의식이 수록시의 곳곳에 배어 있다. 시인은 "나만의 방 한칸/ 그 방 한칸을 혼자 차지하고픈/뜨거운 욕망을 안고/(중략)/절망과 회한이 낮과 밤들을/숨차게 달려왔지만"('빈방 1' 중) 남편의 죽음과장성한 자식들의 결혼으로 빈방에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한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간 시인에게 동회 직원은 "아 선생님 혼자 남으셨군요"라고 묻는다. 시인은 "아니요, 아직 진돗개 두 마리가 있어요. 주민등록등본에는 없지만"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동회 직원과 나는 마주보고 웃었다"('주민등록등본 속에서는'중)는 마지막 구절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112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