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의 도원초등학교 운동장.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제작 미라신코리아, 투자 및 공동제작 유니코리아)의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이곳에는 어쩐지 배우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조감독의 '슛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시작된 테스팅 촬영에 카메라 앞에선 사람은 '올드보이' 때의 말끔한 모습의 흔적은 도대체 남아 있지 않은 채 잔뜩몸이 불어 '동네 청년'의 모습이 된 유지태. 유지태는 이 영화에서 맡은 '문호' 역을 위해 23㎏을 늘렸다. "선생님 가시죠. 애들 벌써 나갔는데요." "어, 끝났어?" "가시죠, 선생님도. 아까 그분들 기다리세요?" 영화의 두 주인공은 유부남 대학강사 문호(유지태)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귀국한 헌준(김태우). 오랜만에 만나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던 두 사람은 무료한 대화를 하던 중 옛 연인이었던 선화(성현아)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 남자와 이들을 만나는 선화가 벌이는 48시간 동안의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날 촬영분은 세 사람이 밤새 술을 마신 다음날 헌준과 선화가 약수터에 간 사이 문호가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둘을 기다리는 장면. 문호는 이곳에서 축구 경기중인 제자들과 우연히 마주치고 학교 한 구석에서 졸다가 깨어 제자들과 함께 학교를떠난다. "교문 앞쪽에 눈 좀 더 뿌려야 겠는데." 영화 속 시간은 겨울. 다소 따뜻해진 데다 햇볕까지 비쳐오는 까닭에 스태프들은 눈으로 쓰이는 염화나트륨을 카메라가 미치는 곳곳에 뿌리고 있다. 평소의 스타일대로 전날 밤 촬영 콘티를 짜며 소주잔을 기울였다는 홍상수 감독은 숙취가 남아 있어 보이는 얼굴에 두 손은 두꺼운 점퍼에 집어 넣은 채 낮은 목소리로 카메라와 배경, 연기를 지시하고 있다. 듬성듬성 자라 있는 수염에 막 졸다 깬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 유지태의 모습은웃는 얼굴까지 카메라 뒤의 감독을 닮았다. 지난 9월 초 크랭크인해 이달 말까지 촬영되는 '여자는…'는 키에슬로프스키,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등 거장들의 작품을 제작, 배급해 온 프랑스 영화사 MK2가제작비 15억원의 3분의 1과 후반작업 등을 지원하는 등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등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 일상의 날카로운 '발견'으로 국내외 많은 팬을 갖고 있는홍상수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며 '생활의 발견' 이후 2년만에 메가폰을 잡는 영화로 국내에서는 5월 초쯤 선보일 예정이다. 몇차례의 테스트를 거치고 모니터를 보고 있던 유지태는 두 눈이 붙으며 얼굴에웃음이 가득하고, 감독은 OK사인을 내렸지만 문제는 햇볕. 응달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본촬영까지 1시간여 동안 주어진 휴식시간에 감독의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감독과 일문일답. --성현아와 유지태, 김태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인터뷰할 때의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선화 역은 여러 여배우를 염두해뒀었고 어느 순간 이전에 두 차례 인터뷰했던 성현아가 갑자기 떠올랐다. '기'가 맞은 셈이다. 주위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고 꼬이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참 건강하고깨끗한 느낌이 사람이다. 느낌으로 캐스팅한 배우들은 이후에 촬영을 진행하면서 차츰 새로운 이미지가섞여가는 듯하다. 유지태의 경우는 크고 굵은 느낌이 강했다. 그런 점에서 느껴지는순수한 이미지가 문호 역과 잘 맞는다. 김태우도 마찬가지로 등치는 크지만 세세한느낌이다. 유지태는 살을 찌우게 하고 반대로 김태우는 5~10㎏ 정도 빼게 해서 다른이미지를 주게 했다. --그동안의 캐스팅 중에서 가장 화려한 듯하다. ▲내 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사실 배우의 지명도는 아무런 의미가없다. 이보다는 그 배우의 다른 면을 (영화의) 원래 틀에 붙여 넣는 것이 중요하다. --제목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프랑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엽서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루이 아라공이라는 시인이 쓴 구절로 남자와 여자의 자리를 바꿨다. '남자'나 '여자'나 '미래'나 각각의 단어들은 많이 쓰는 것들인데 조합하는 묘한 긴장감을 주더라. 입에서서 잘 돌기도 하고. 특별히 구속시키는 메시지는 없다. --당일이나 전날 현장에서 대본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편하지는 않는가 ▲시나리오는 미리 써 놓지만 현장에서 한 줄이라도 대사가 더 보태지는 것 같다. 오늘 대본은 어제 나왔다. 이젠 버릇이 되서 그런지 오히려 집중하기 좋은 장점이 있다. 배우들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지만 익숙해지면 괜찮다더라. 배우들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하지 못하니 수없이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고 고정된 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천=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