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잘 돼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내는데도 기업들은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천명한다. 그래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의 위험은 상존하고 "30대 정년"이라는 소리마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만 벗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회사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와이 가쓰히토 지음,김영철 옮김,일빛,1만3천원)는 단순한 경기순환의 한 국면으로 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이런 현상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원인진단과 함께 회사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도쿄대학 경제학부 교수인 저자는 10년 이상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회사의 바람직한 존재형식을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먼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금융과 정보기술(IT) 혁명,글로벌화라는 3가지 큰 흐름 속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주주경영을 주요 내용으로 한 미국식 경영이 국제경제의 흐름을 주도해 왔지만 이것이 세계적 표준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법인인 주식회사는 단지 주주 주권론적 회사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회사나 또 다른 형태의 회사도 가능하다는 것. 미국형 회사통치기구(코퍼레이트 거버넌스)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던 엔론의 파산은 미국형 회사 시스템의 모순이 초래한 결과라는 얘기다. 또 21세기에는 주주가 자본 공급자로서 갖는 힘이나 중요성이 줄어든다고 저자는 내다보고 있다. 금융혁명으로 인해 자본 조달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금융 및 IT 혁명과 글로벌화의 이름 아래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 산업자본주의시대 회사의 조직과 존재형식을 나름대로 전망하고 있다. 포스트 자본주의에서는 개별 기술이나 제품이 아니라 차이성이 있는 기술 및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인적 자산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코어 컴피턴스)이 된다. 실제로 지난 2001년을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총가치는 3백90억달러,이 중 기계설비와 컴퓨터 등 유형자산은 23억달러에 불과하고 90% 이상이 그 안에 축적된 무형의 지식자산 가치였다고 한다. 이처럼 회사 내부의 인적 자산이 중요해지는 대신 산업자본주의에서 유형자산을 소유하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자본가들의 역할은 축소된다. 단지 돈을 대는 것만으로는 이윤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기획력과 기술자의 개발력,종업원의 노하우 등 인적 자산을 바탕으로 무형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따라서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인간형 회사구조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근거로 저자는 미국식 주주 주권론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변천과정과 회사 구조,일본형 자본주의의 특징 등을 폭넓게 설명하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문용어를 가급적 피하고 쉽게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