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 2003년 클래식 음악계는 대형 야외무대의 잇단 등장과 함께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방한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특히 대규모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벤트성 오페라는 오페라의 저변확대를 위한새로운 전기를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한편으로 수익성 논란과 민간오페라단의 위축등을 가져오는 등 오페라계에 여러모로 중요한 고민거리들을 남겼다. 지난 5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투란도트」를 시작으로 9월에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수십마리의 동물들까지 동원한「아이다」가 공연되는 등 '대규모 물량'을 내세운 야외 오페라 제작이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수십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로 인해 티켓 가격은 최고가가 50만-60만원대로까지치솟았고, 오페라를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여긴 기획자들이 너도 나도 나서면서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한국인이 봉'이라는 식의 소문마저 떠도는 등 '붐'이 일었다. 하지만 무려 80억원을 들인「아이다」가 제작비의 절반에 가까운 40억원의 적자를 남긴 채 막을 내리면서 대형 오페라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과 함께상업적 목적을 앞세운 이벤트성 공연에 대한 질타가 잇따르기도 했다. 대형 야외무대는 오페라 뿐 아니라 지난 4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상암경기장), 5월 조수미의 평화 콘서트(〃), 10월 신영옥.호세 카레라스 콘서트(〃) 등 다른 장르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 무대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들도 많다. 단, 지나친 상업성과 제작비 산정에서의 쓸데없는 거품을 걷어내고 작품에 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것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대형 오페라의 기세 때문인지 올 하반기 실내극장에서는 예술의전당이 자체기획한「리골레토」「돈조반니」등을 제외하면 민간오페라단의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없었을 만큼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대형 야외무대에 맞서 실내극장에서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공연들이 그 어느때보다 풍성하게 펼쳐져 음악팬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주빈 메타의 빈 필(3.31-4.2), 로린 마젤과 서울시향 특별협연(4.13), 홍콩 필(2.21-22), 정명훈의 도쿄 필(8.31),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9.30-10.1) 등 세계적인 교향악단.지휘자들의 내한 무대가 잇따라 펼쳐졌다. 실내악.기악 분야에서는 특히 두드러졌는데, '쇼팽 콩쿠르 우승자 시리즈'로 피아니스트 리윈디(3.2), 크리스티안 침머만(6.4), 스타니슬라브 부닌(10.29), 당 타이 손(11.16)이 차례로 내한 연주회를 가졌고,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초프스키(9.7), 첼리스트 요요마(11.5), 비올리스트 유리 바슈메트(11.9), 미샤 마이스키(11.6),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11.8) 등의 공연도 큰 인기를 모았다. 장영주(빈필 협연), 장한나(마젤 지휘 서울시향 협연), 이유라(11.21-22), 임동혁(상트 페테르부르크필 협연) 등 한국 출신 '신동'들의 내한무대도 어김없이 펼쳐졌다. 성악쪽에서는 홍혜경(9.18), 조수미(10.5), 신영옥(11.14) 등 '빅3'의 독창회가나란히 열렸고, 테너 페터 슈라이어(10.17),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11.24),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12.5)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도 한국을 다녀갔다. 올해 클래식계에서 또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연주자들 사이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은 '전곡 연주' 가운데 임헌정의 부천 필 말러 교향곡 전곡, 강충모의바흐 피아노곡 전곡 연주가 각각 5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는 것. 특히 부천 필의 연주회는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기획한 것 자체가 획기적인시도였던데다 연주회마다 '마니아'층 관객들을 한데 끌어 모은 유례없는 공연이었다는 점에서도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국악계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던 인물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남겼다. 지난 7월에는 국내에 완창 판소리 시대를 처음으로 연 주역으로, 판소리계 거목이었던 박동진 명창이 87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최고령 명창으로 꼽혔던 인간문화재정광수 명창도 지난 11월 94세를 일기로 숨졌다. 그런 가운데 국립국악원은 새 원장 선임을 놓고 편파 심사 의혹이 일어 홍역을치르기도 했다. 지난 8월말로 임기가 끝난 국악원 원장을 새로 공모, 심사하는 과정에서 소관부처인 문화관광부가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심사위원을 구성했다는의혹이 일어 물의가 빚어진 것. 논란이 거듭된 끝에 결국 후보자 가운데 국악원 정악단 지휘자인 김철호씨가 새원장으로 취임했으나 이 사태는 국악계의 보수와 신진 세력간의 갈등을 표출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지난 8월에는 판소리 다섯마당이 미국 링컨센터 페스티벌,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등 굵직한 무대에 초청돼 호평을 받은데 이어 11월에는 판소리가 유네스코(UNESCO)의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판소리의 세계무대 진출 가능성을 한단계 더 높였다는 기대와 함께 우리 고유의종합예술인 판소리를 보다 대중화, 상품화해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빨리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계기였다. ▲무용계 = 올 무용계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는 현대발레에 대한 관심 제고와 민간축제들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창작 측면에서는 이름난 중진.중견 안무가들이 대체로 소강상태를 보인 가운데 30대 미만 신진들의 성장이 오히려눈부셨다. 최근 들어 현대발레에 대한 관심을 부쩍 드러내기 시작한 유니버설 발레단(UBC)은 '네 가지 모던발레의 유혹'(8월) 공연을 통해 주로 고전물에 익숙해있던 발레팬들의 눈길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나초 두아토와 하인트 슈푀를리같은 유럽 거장들의 작품과 국내 안무가들의 창작발레를 섞은 무대로, 고전 못지않게 현대발레도 재미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립발레단도 '트리플 빌'(11월)에서 조지 발란신, 장-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현대발레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80년대부터 가뭄에 콩나듯 소개돼왔던 현대발레는 향후 국내 발레계에서 고전작품과 함께 당당한 양대 지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해보인다. 민간 차원에서 열리는 무용축제들도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국내 최대의무용행사로 평가받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는 올해 참가작들의 질적 수준이나행사운영 등 여러 측면에서 완전히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지난해부터 대폭적인 예산투입에 힘입어 일거에 면모를 바꾼 국제현대무용제(Modafe)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안무가들은 부진했다. 창작계의 대표주자격인 40대 안무가들이 대체로 눈에 띄는 신작을 많이 내지 못한 반면, 30대 혹은 그 이하의 젊은 안무가들이 신선한발상과 패기를 바탕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아 안무계도 서서히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국단체의 내한공연 가운데서는 SIDance에서 소개된 프렐조카주 발레단, 인트로단스 발레단 외에 LG아트센터 초청공연으로 선을 보인 쿨베리 발레단, 피나 바우쉬 무용단, 벨기에 빔 반데케이부스의 울티마 베스 무용단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봄의 제전'과 서울공연예술제 모린 플레밍의 '애프터 에로스' 공연을 계기로 공연예술에서의 누드 문제가 도마에 올랐으나 본격적인지적 담론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