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EO의 조건'(이해익 지음, 청림출판, 1만2천원)은 가볍게 읽히는 경영 에세이다. 그러나 책갈피 사이에 흐르는 감성의 물결은 도도하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여운들이 따라붙는다. 이 책은 '기업이 열냥이면 CEO는 아홉냥'이라는 진리를 토대로 한국의 CEO가 배워야 할 60가지 경영비법을 담고 있다. 저자는 20여년간 경영현장의 '육박전'을 거친 리즈경영컨설팅의 대표컨설턴트. 그는 CEO의 유형을 시키는 대로 하는 머슴형, 알아서 기는 가신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식의 속앓이형, 대세를 따르는 갈대원만형, 속과 겉이 다르고 앞뒤가 다른 양두구육형, 오너가 된 줄 착각하는 치매형, 그래도 희망을 심는 횃불형으로 나누고 지금이야말로 횃불형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CEO의 현명한 '선택'을 강조한다.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은 일본의 메모리칩 생산능력이 막강해지자 이를 과감히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으로 사업방향을 틀었다. 이는 컴퓨터 산업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그로브 회장이 "CEO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전략적인 전환점의 속성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해 회사를 살리는 일"이라고 말했던 이유도 선택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중성자탄이라고 불리던 잭 웰치 GE 회장도 사업부문별로 1,2등이 아니면 과감히 버리면서 성공을 이끌었다. 저자는 특히 '프로 CEO의 선택은 재빠르고 단순 명쾌하며 힘이 있고 스마트해야(4S)한다'고 강조한다. CEO가 섬겨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첫째는 고객이고 둘째는 종업원이며 셋째는 주주와 채권자, 넷째는 협력회사와 사회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쓴소리를 경청할 줄 아는 CEO가 참된 리더라는 것이다. 'CEO는 없는 듯 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잭 스미스 GM 회장이 노자의 리더십을 좌우명으로 삼은 것을 떠올려보자. 가장 뛰어난 임금은 무위자연의 도로 나라를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큰 강물은 소리없이 흐르지만 개울물은 요란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CEO는 비행기 조종사와 같고 위기관리에도 능해야 한다. 변화의 코드를 읽고 남보다 먼저 변화해야 한다. 특히 여자와 10대들의 감수성을 이해해야 소비성향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말랑말랑한 감성의 촉수를 지녀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