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간직하고 있을 추억을 나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로 공산당에 입당하던 날의 기억입니다. 나는 파리에서 입당했습니다... 내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 순간을 어찌잊을 수 있겠습니까!"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고있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공산주의자였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가 프랑스 공산당원의 신분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피카소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그 역시 공산주의자로 프랑스 남부 니스의 공산당 기관지 「애국자」의 기자를 지낸 조르주 타바로가 쓴 「피카소와 함께한 시간들」(큰나무刊)은 공산주의자로서의 피카소의 면모와 공산당에 대한 그의 짝사랑을 보여준다. 1944년 감격스런 공산당 입당 이후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당에 대한 애정과 충절을 잃지 않았다. 그는 노동절에는 노동조합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행진했으며 공산당 창당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비둘기를 안고있는 사람을 그렸다. 공산당은 그 그림을 연단의 배경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평화운동과 핵무기금지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공산주의자로서 피카소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공산당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받았는가하면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 추방운동이 서유럽까지 확대되면서 그의 작품 또한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해석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우익언론들에 의해 공산당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작품이라는 모함을 받기도했다. 그러나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변함없는 충정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등을 돌린 공산당이었다. 1953년 피카소는 공산당의 주문으로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린다. 공산당 지도부는 피카소가 그린 초상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이 초상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당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스탈린의 범죄가 폭로되고 옛 소련이 붕괴 조짐을 보일 때에도 당에 대한 피카소의 충절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공산당은 그에게 조국이었고 가족이었다. 이 책은 피카소의 마지막 30년에 초점을 맞췄다. 피카소는 우정을 나누었던 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그림을 만드는 사람이지. 민중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생각해보게. 민중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내가 그들과 다른 세계에 있다는 뜻이 아니겠나? 나는 내부에 있고 싶네" 강주언 옮김. 256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기자 ke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