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60)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 한 여자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심청'(문학동네,전2권)을 내놨다. 고전소설 '심청'과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고전소설 속에서 심청은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봉건사회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순종적인 인물이지만 황석영의 작품에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여자로 새롭게 형상화된다.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 소설 속 심청과는 달리 열다섯 나이에 은자 삼백냥을 받고 중국 선상들에 팔려 그곳에서 몸을 파는 기생이 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유곽인 '복락루'에서 떠돌이 악사 동유를 만나 사랑을 싹틔운 심청은 함께 복락루를 도망쳐 둘만의 혼례를 올리지만 가혹한 운명은 이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열다섯 청이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여든의 노파가 돼 있었다. 남녀간의 성애(性愛) 묘사가 과감하고 노골적이라는 점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거룻배 위에서 동유와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과거 황씨의 작품에선 구경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내게는 이번 작품이 심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의 몸의 기록으로도 읽힌다. 15세에서 여든에 이르는 그 기록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그 '처절'과 '안타까움'이 마지막에 가 닿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희미하지만 말할 수 없는 미소'이다. 지극한 몸의 고통 뒤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그 미소',이는 황석영이 아니면 가 닿지 못할 미소이기도 할 것"이라고 평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