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는 단풍의 화려함은 없지만 그윽하고 우아한 맛을 지녔다. 복잡하고 골치아픈 세상사를 잠시라도 잊고 싶다면 억새의 은빛물결속에 한번쯤 자신을 맡겨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10월 중순부터 하순까지가 억새 절정기이긴 하지만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이때보다 철지난 감이 있는 이맘때가 오히려 억새의 참맛을 느끼기 좋다. 수도권에서 억새로 유명한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을 찾는다. 승용차로 서울에서 출발해 의정부를 지나 43번 국도를 타고 2시간 남짓 달리면 산정호수 옆에 위치한 명성산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명성산에 오르는 길은 두가지.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급한 자인사코스와 완만한 등룡폭포 코스가 있다. 가족들과 함께 부담없이 오르고 싶으면 등룡폭포 코스를,땀을 흠뻑 흘리고 싶다면 자운사 코스를 택하면 된다. 등룡폭포 코스를 택한다. 등산로 초입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포장마차 아저씨께 정상의 억새밭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자 쉬엄쉬엄 가면 2시간이면 충분할 거란다. 가볍게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등산길이 간단치 않다. 30분이 지나자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신발끈을 다시 한번 조이고 힘을 낸다. 웅성웅성 하는 사람들의 소리와 연신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에 고개를 들어보니 등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지는 않지만 단단한 바위와 맑은 물줄기가 어우러진 폭포의 모습이 자못 당당하다. 수량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비경을 연출했을 텐데 가뭄이 심해 보였다. 폭포를 지나 약수터에서 갈증난 목을 축이고 다시 1시간 남짓 올라갔을까. 돌연 뻥뚫린 하늘과 함께 깔린 억새의 은빛물결이 왜 이제야 왔느냐는 듯이 반긴다. 사방 온 주위를 둘러봐도 억새뿐이다. 등줄기의 땀을 식혀주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과 억새,그리고 늦가을의 파란하늘이 한데 어우러진 장관은 한폭의 동양화다. 하산할 때는 등산화를 벗고 지압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등산에 지친 발의 피로를 푸는 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포천=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 [ 여행수첩 ] 포천에 가면 양이 많고 질도 괜찮기로 소문난 이동갈비를 안 먹어볼 수 없다. 한국인 갈비(031-535-3253)와 바위섬 가든(031-531-3700)등이 이름난 이동갈비 전문점이다. 갈비를 먹은 뒤 일동으로 가서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푸는 것도 좋다. 산정호수 입구의 한화콘도 온천(031-534-5500),일동면의 제일온천(031-536-6000),일동싸이판(031-536-2000)등의 물이 모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