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과 한나」(카트린 클레망 지음. 정혜용옮김)는 독일 실존철학의 거장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와 그의 제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 그리고 아내 엘프리데 하이데거의 평생에 걸친 애증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은 폭우가 쏟아지는 1975년 어느날 한나가 병상에 누운 하이데거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한나를 맞이한 것은 하이데거의 부인이자 둘의 사랑을 용납할 수 없었던 하이데거의 부인 엘프리데였다. 마주앉은 두 여인은 지난날의 기억과 비극을되새긴다. 하이데거와 한나는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났다. 18세의 여대생 한나는 독일 대학사회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35세의 젊은 철학자에게 매료되고 둘은 금새 사랑에 빠졌다. 둘의 사랑은 하이데거의 학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소설속에서 하이데거는 한나가 카를 야스퍼스에게 수학하기 위해 떠나자 그녀의 '부재'를 바탕으로 「존재와 시간」(1927)을 쓴 것으로 나온다. 세 사람의 운명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유대계 독일인 한나는 반유태주의를 폭로하는 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는 등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 후 수용소를 탈출,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는 「전체주의의 기원」「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의 저서를 펴내 명성을 얻었으며나치에 입당한 하이데거를 공격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아내와 함께 나치에 입당한 후 프라이부르크 총장 취임사에서 나치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다. 독일이 패전하자 하이데거는 나치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교수직도 박탈당했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하이데거와 한나의 사랑은 지속됐고, 보수적이고 가정을 소중히 여긴 엘프리데는 둘의 관계를 지켜보며 괴로워했다. 소설 속에서 마지막 만남을 가진 세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기 시작한다. 한나는 하이데거와 만난 지 4개월 후인 1975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죽음을 맞았고, 하이데거는 다시 5개월 후인 1976년 5월 연인의 뒤를 따랐다. 엘프리데는 1992년 3월 9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문학동네 刊. 414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