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데까지 가봐야 자기경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평론가 최성실(36)씨의 첫 평론집 「육체, 비평의 주사위」는 '극'(極)을 말했다. 이때의 '극 체험'은 흥미롭게도 육체(몸)의 밀고나감으로서의 체험이다. 「내일을 여는 집」(방현석)의 투사형 여성 이진숙이 직장에서 잘린 남편의 복직을 위해 넘치게 자기를 희생하거나 남편이 원하면 아이를 떼고 싶어도 낳고, 가정을 지켜내려 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최씨가 보기에 '극 체험'과 동떨어져 있다. 도중에 작파한 탓이다. "남편이 직장에서 잘려 돌아온다면 아내는 무척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불화가 생기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거나 이혼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이야기가 아닌가요. 남편은 폐인이 되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이 보다 진솔하지 않나요" 단순화가 허락된다면 최씨의 평론집은 '극 체험'의 유무 여부로 90년대 소설의 진정성을 검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견해로는, 그 이전은 물론이고 90년대의 주목받았던 일군의 여성작가들의 작중인물들도 당대 지배가치와 윤리 등의 이데올로기에 발목 잡혔다. 거기의 인물들은 넋두리하며 자조하거나 상투적인 불륜의 길로 치달을 뿐 궁극적으로는, 집으로 귀환한다. '홈 커밍'의 식상한 공식을 답습하는 이들은 '창녀'로 표상되는 타락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슷한 지점에서 이들은 '이성'의 목소리를 듣는다. '돌아와'라는. "매스컴 등을 통해 맥락화한 만들어진 기억,이른바 '문화기억'의 담론이 가치나 규범.법.윤리가 되어 개개인의 고유한 체험과 그 가능성을 앗아가고, 자기 정체성을 착각하도록 하죠. 그 속에서 여성들은 어머니와 아내, 애인의 공주적 마스크뒤에 안주하고요" 최씨가 배수아.백민석.김연수씨의 글쓰기에 주목한 것은 이들의 소설이 체험으로서 육체의 밀고가기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배씨의 '창녀 되기', 백씨의 '빈자(貧者) 되기'와 극한까지 경험을 검열하는 김씨의 소설미학을, 최씨는 '문화기억'에 맞선 도저한 저항으로 읽었다. 이럴때라야 이성이 강제하는 균질.보편.합리성의 신화 그리고 가짜 경험.기억을 검열, 반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씨는 묻고 있는 셈이다. 이로써 짜여진 완강한현실에 균열을 주려는 것인데, 최씨는 반듯함보다 울퉁불퉁함이 보다 사실에 가깝다고 믿고 있다. 1994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최씨는 이 잡지 편집동인이며 동인문학상 심사 등에 참여한 대표적 소장평론가 중 한명이다. 다음은 문답. -- 표제에서 '육체'의 의미는. ▲어떤 것보다 빠른 감각이다. 육체는 이성보다 먼저 반응한다. 이성/합리성이 강제하는 것들을 반성적으로 보는 것으로서의 육체이다. 육체담론으로 소설의 새로운 면을 드러낼 수 있다. 흔히 황석영씨를 진보적 작가라고 하지만, 그가 육체를 다루는 방식은 권력관계 안에 놓인 그것을 넘지 못함을 알 수 있다.(황씨의 「낙타누깔」 등장인물들은 파시스트적 태도로 창녀를 다룬다) -- 육체담론의 지향은. ▲지금껏 지배적이었던 남성적 담론들은 잡종성과 혼성성, 다층성 등의 감각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 억압해왔다. 육체담론은 이에 반성한다. 그리고 균형보다는 불균형, 보편적 집합성 보다는 개체적 자율성을 존중한다. -- '문화기억'에 주목하는 것은. ▲문화기억은 만들어진 기억이다. 가령 드라마 '모래시계'는 80년대의 정신은 '이렇다'라고 간단히 정리해버준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고유경험이 '모래시계'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구석에서 플레이보이를 보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만들어진 문화기억 탓에 자기가 '모래시계' 처럼 살았다고 착각하고 마는 것이다. 김연수씨의 소설이 구별되는 것은 자기기억이 진짜인지를 끊임없이 검열해가는데 있다. 문학과지성사 刊. 208쪽. 1만원.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