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드라마로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전에 영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는데 그 후에는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았거든요. 실제로 죽음을 앞두게 된다면 슬퍼하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요.남은 시간 어떻게 내 인생을 잘 정리할까를 고민해야겠죠." 배우에게 시한부 삶을 연기하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유호정에게는 차분하게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된 듯하다. 지난 29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2TV 새 수목드라마 '로즈마리'에서 유호정은 암 선고를 받고 주위를 담담하게 정리하는 평범한 주부 역할을 맡았다. 암 말기환자의 투병기까지 읽고 있다는 그녀의 눈에서 '늦바람 난 앞집 여자'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7년째 간암으로 투병 중이신 어머니 생각이 가장 많이 나요. 병원 장면을 촬영할 때는 정말 우울해서 미치겠더라고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너무 환자를 환자 취급하면 더 약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가 괴로워하시면 '엄마! 암환자가 이 정도는 아파야지 어쩌겠어'라고 냉정하게 말하곤 하죠." 유호정은 드라마에서 남편(김승우)에게 여자(배두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여자에게 남편과 두 아이를 부탁하게 된다. 그녀는 "비현실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답했다. "남편이 아직 젊은데 '평생 혼자 살아라'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닐까요. 내 남자가 홀아비 냄새 풀풀 풍기면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것도 썩 유쾌할 것 같지 않고요.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여자라면 정말 믿을 수 있는 다른 여자에게 사랑하는 이들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 것 같아요." 유호정은 결혼 후 계속해서 아줌마 역할을 맡게 돼 조금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단다. "한국 드라마는 여배우를 너무 빨리 늙히는 경향이 있어요. 가끔은 서글프기도 하죠.하지만 드라마 색깔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멜로물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한 역할들은 모두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큰 고민은 안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송지나 작가가 집필하는 이번 작품에 대해 "템포가 빠르면서도 감정표현이 세세해 굉장히 어려운 작품"이라며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