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민둥산 ' 중) 시인 김선우(33)씨의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刊)는 에로틱한 몸의 이미지로 충만하다. 그를 둘러싼 사물과 추상은 시적 변용을 거쳐 관능어린 여성의 몸이나 몸의 흔적들로 모양을 바꾼다. 그때의 몸들은 익히 그려져왔던 '억압'을 환기시키지 않는다. 외려 활력에 가깝다. "..참 잘 곰삭은 저 저녁 풍경이 실은 천연스레 뒤를 보이고 앉아 볼일 보는 크낙한 엉덩이라면 저물녘 저 태양이 문이라면//금빛 항문 - 어슴푸레 열리는 새벽으로 부터 한낮 지나 저물녘에 이른 우리의 하루가 뒤를 보이고 앉아 시름없이 일을 보는 크낙한 엉덩이의 한 오분 시원한 용변과 같다면.."('어느날 석양이'중) 시인은 3년여전부터 강원도 문막에서 살아왔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매일 강을 바라보는 일의, 바다의 눈매에 날마다 다르게 접히는 주름을 헤아리는 일의 지복함을 맘껏 누리고 있다"며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원없이 말하면서 날마다 무릎 꿇고 이 땅에 입맞춘다"고 적었다. 도회를 떠나 강원도로 들어간 시인의 몸은 대지(大地)를 향해 바짝 엎드렸다. 만물을 낳는 대지는 여성의 '자궁'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아이를 낳는 여성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는 자궁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오줌과 똥을 누는 기관도 자궁의 계열에 든다. 여자들이 산비탈에 앉아 오줌을 누면 "땅 끝까지 강물소리 자분자분 번져가" 나무를 키우고('오동나무의 웃음소리' 중), 벌레들이 똥을 눈 생밤을 깨문 나는 "귀하게 똥을 잡순 후에" '물고기'('너의 똥이 내 물고기이다' 중)를 낳는다. "저물녘 저태양"도 새로운 하루를 낳는 '금빛 항문'('어느날 석양이' 중)이 된다. 평론가 김수이씨는 "김선우의 시에 그려진 원초적인 몸들은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신성함과 비천함의 구분 이전에 있다"며 "이 몸들은 자궁을 통해 계속 다른 몸으로 변신한다"고 말했다. 시인은 1996년 「창작과 비평」겨울호로 등단했으며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18쪽. 6천원.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