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폐막된 한양대 인문학연구소 주최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 학술대회 마지막날 일본 출신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 아시아학과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영화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디어 헌터(The Deer Hunter.1978).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목숨을 내건 '러시안 룰렛' 게임과 삽입곡 '카바티나'(Cavatina)로 특히 유명하다. 이 영화는 한국에도 상륙해 대단한 흥행을 누렸다. 이 영화는 "죽음 그 너머에 있는 영웅주의와 우정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한 전쟁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그 해 아카데미상 5개 부분을 휩쓴 이 영화 중에서도 사카이 교수는 한 베트콩 병사가 무고한 베트남 양민들을 학살하는 첫 장면과, '러시안 룰렛' 중간 대목 및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미군 병사들이 '신이시여, 아메리카에 축복을'(GOD BLESS AMERICA)를 장중하게 합창하는 마지막 장면을 각각 편집 소개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상영하고 난 직후 사카이 교수는 "아마도 한국에서도 요즘이 노래를 많이 듣고 있을 것이다. 특히 9.11 직후에 아주 많이"라고 '해설'했다. 이에 사카이 교수와 함께 이날 학술대회 공동사회를 맡은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GOD BLESS AMERICA and Hi Hitler?'(GOD BLESS AMERICA와 '하이 히틀러' 그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맞장구를 쳤다. 영화 '디어 헌터'나 9.11테러 직후 미국사회에 나부끼는 'GOD BLESS AMERICA'가 독일 총통 히틀러에 대한 독일국민의 열광과 광신과 다를 바 없다는 반어법이었다. 이처럼 영화 혹은 그것이 대표하는 영상문화가 '대중사회', 특히 독재정권을 형성케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학계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누구보다 일찍이 영화의 이러한 대중조작술을 주목한 사카이 교수가 '대중독재'를 주제로 한 이 학술대회에서 '디어 헌터'를 비중있게 다룬 까닭은 이 영화에 전형적인 미국식 '대중독재'술이 숨어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안 룰렛' 장면을 방영하고 난 뒤에 사카이 교수는 이 영화를 겨냥해 "무고한 미국 젊은이들이 악독한 베트콩 군인들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미국은 베트남에서 저지른 집단적 죄의식(collective guilt)을 대체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무렵에 나온 미국 영화 '람보' 또한 그 전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영화는 사카이 교수에 따르면 70년대 이후 득세하게 된다. 요컨대 영화가 대표하는 영상문화가 대중독재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사카이 교수는 경고한 셈이다. 기자와 만난 사카이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지구화(globalization)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내셔널리즘의 `폭력성'을 한 시대, 혹은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개념으로 처음으로 '대중독재'라는 용어를 제시한 것은 학문적으로 대단히 의미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