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한 때 국호를 '고려'로 사용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북한에서 나왔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발간하는 계간 학술지 '역사과학'(2003년 3월)은 발해는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고구려의 옛 영토 회복을 위해 750년대 말부터 770년대까지 국호를 '고려'로 썼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학자들은 문왕 통치시기(737~793년) 발해와 일본이 주고받은 외교문서와 일본의 '속일본기' 등을 통해 그런 사실을 밝혀냈다. 발해가 고려를 국호로 사용한 것은 759년 정월 문왕이 사신 양승경을 일본에 보내면서부터다. 이 잡지는 속일본기를 인용해 "문왕은 사신 양승경을 통해 일본왕에게 자신의 의사를 구두로 전달하면서 '고려국왕 대흠무가 말한다'고 해 발해가 곧 고려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순인왕은 양승경이 문왕의 의사를 전달하자 답신에서 문왕을 고려국왕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이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잡지는 "문왕이 자신을 고려국왕이라고 자칭한 시기에 일본왕도 고려국왕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발해를 고려라고 부르는 것이 두 나라 사이의 외교관례에 맞는 호칭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당시 일본의 역사문헌에서도 일본에 도착한 발해사신을 '고려사신','송고려사','견고려사' 등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역사과학'은 설명했다. 속일본기는 758년 9월과 759년 10월 각각 일본에 도착한 발해사신 양승경, 고남신을 고려사신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측 문헌에서도 8세기 중엽 발해로보내는 사신을 '견(송)고려사'로 칭하는 기록이 모두 다섯번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속일본기는 758년 발해사신 정해일이 일본에 왔다고 기록했다가 759년 봄정월부터 발해사신을 고려사신으로 호칭을 바꿨다면서 "이는 발해사신들이 (일본의)수도에 들어와 국호사용에 대한 발해의 요구를 알려준 이후부터 일본도 발해를 고려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역사과학'은 "문왕시기 고려 국호를 사용한 것은 문치(文治)정책을 추진하고 국력을 가일층 발전시켜 옛 고구려와 같은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려는데 있다"면서 "발해는 고구려와의 계승성을 적극 표방함으로써 대외적으로 고구려와 같은 지위와 국력을 과시하려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