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역사 서술에 있어 학자의 주관 개입의 가능하다는 `현재성'을 인정하고 객관적 서술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0일 수원 아주대에서 열리는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31)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21세기 한국 사학의 방향 모색'이란 주제의 논문에서 한국 역사학계의 역사 인식 태도와 다원성 부재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현재를 `한국사학의 위기'로 진단하고 정치성과 이념성에 봉사해 온 한국역사학계가 `객관성'이란 이름 아래 현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견을 인정하지 않은 배타적인 학풍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역사란 `지금, 여기'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할 과거의 기록인 이상, 정치, 이념적 요소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는 `현재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한국역사학계는 주관 개입을 인정하고 `객관성 서술'이란 가면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전통 사학은 전제 군주의 치세(治世)의 도구로 봉사해 왔고 근대 민족주의는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한 `애국심의 교과서'였다. 또한 `원래 있는 그대로'를 추구한다는 실증사학 역시 근대 민족주의 역사관의 연장으로 `국민'과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 만들기'에 봉사했으며 1980년대 한국 역사연구의 주류를 이뤘던 민중 사학도 역사 서술을 `사회 변혁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 민중사학은 또한 현재성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해 `반(反) 부패항쟁'의 성격을 띤 홍경래의 난(1812)을 `반봉건 투쟁'으로 서술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1894년 동학농민 항쟁을 봉건 사회에 반혁하는 `반봉건 투쟁'으로 진단하고 이를 진정한 근대화의 요구였다고 주장했다는 것. 그는 또 조선 후기 실학사상이 한국의 근대화의 사상적 맹아(萌芽)라는 한국 역사학자들의 주장 역시, 외국 학자들의 이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배타성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연구자가 주관 개입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역사 연구의 내재적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는 동시에 한계성을 나름대로 극복하는데 일조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