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회는 제왕학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였다.

왕과 왕실은 국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하면서 잘 조직된 관료 시스템을 통해 왕도정치라는 이상을 실현해야 했다.

조선 사회의 잘 발달된 인문적 질서 속에서 왕과 왕실은 결코 과도한 물리적 힘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왕은 패도적 힘을 행사하는 폭군이 아니라 덕과 학문을 겸비한 스승이자 군주,이른바 군사(君師)가 될 것을 요청받았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김문식·김정호 지음,김영사,1만4천9백원)에서는 바로 이 왕도정치를 실현할 현명한 군주가 과연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보양청-강학청-세자시강원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왕세자 교육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왕실문화 전문 연구자와 아동문학가로 만난 이 책의 저자들은 '조선왕조실록' 등 20여종의 방대한 고서와 최근 연구 논문들까지 아우르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책은 우선 전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듯 쉽게 서술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책을 읽어 가노라면 궁궐을 산보하면서 역사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왕실 기록화 등의 각종 도판들을 수록하여 왕세자 교육을 시각적으로도 충실히 재현하였다.

특히 조선조에서 책을 통한 강학교육뿐만 아니라 각종 의례와 의식을 통해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한 예로 왕세자의 책봉례(冊封禮)와 입학례(入學禮) 등이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 속에 거행되고 있었으며 그 의식이 종국적으로 왕실과 왕세자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내는 정교한 통치 메커니즘의 한 구성요소였음을 이 책은 알려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조선조의 교육이 얼마나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돼 있었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태교,유모 선발,보양청 교육,유아기에 시작하는 강학청 교육,입학례·가례·관례 등 각종 통과의례,세자 책봉 후 시작하는 세자시강원 교육까지 그야말로 물샐 틈 없이 짜여진 교육 속에서 왕세자는 유자들에 의해 길러졌다.

왕세자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강 주강과 석강 외에도 수시로 이어지는 소대,한밤중에 진행되는 야대까지 말 그대로 공부의 연속이었다.

강력한 왕권도 기실 잘 짜여진 선비들의 철학과 사상의 그물망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왕실의 엄격하고 딱딱한 교육만을 논하고 있지는 않다.

교육은 엄격하고 근엄한 규범과 당위의 세계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이런 규범과 당위의 세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왕실도 예외가 아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역동적인 현실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왕실의 엄격한 유교교육 이면에는 미신과 주술에 사로잡힌 욕망의 세계가 있음을 비춰 준다.

왕세자 교육을 둘러싸고 향후 정국 구도와 관련해 정치세력간 암투가 빚어졌던 저간의 사실에 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정순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