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중공군 개입으로 한반도 동북부의 연합군은 위기에 몰렸다. 그 해 12월 장진호 포위 돌파작전에 이어 흥남 철수가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흥남부두를 떠난 하물선의 선장은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피란민들을 모두 배에 태웠다. 최근 출간된 '기적의 배'(빌 길버트 지음, 안재철 옮김, 자운, 1만2천2백40원)는 흥남 철수 때 1만4천명의 난민을 구출한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 승무원들과 피란민들의 휴먼드라마를 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한국전쟁 때 미국 공군에 근무했던 저자는 2차대전중 가장 위대한 해상구조의 순간을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복원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갑판과 화물칸에 들어찬 난민들.먹을 것도 없고 화장실이나 의료진, 통역관마저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적군의 기뢰를 뚫고 3일 만에 거제도에 도착하기까지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몇 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생명의 기적'이 펼쳐졌다. 이 영웅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인 승무원들은 한국과 미국정부의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의 더께에 덮여 이들과 '기적의 배' 이야기는 잊혀졌다. 이 책을 옮긴 안재철씨(47)는 생존 선원인 로버트 러니 변호사를 찾아가 당시의 상황을 일일이 재확인하고 잊혀진 역사를 되살려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안씨는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2001년 10월 타계)가 마리너스 수사라는 이름으로 봉헌한 미국 뉴저지주의 뉴턴수도원에 추모공원과 기념비를 건립하고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뮤지컬로 만들어 미국과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주립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프라이모리스 리서치 대표와 미국대통령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