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청동기시대, 그 가운데서도 청동기물이주전공인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북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갈동마을 토광묘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 거푸집 한 쌍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토광묘에서 나왔대요? 이건 처음인데. 청동도끼를 만들기 위한 돌 거푸집이(충남 부여) 송국리 주거지에서 나온 적은 있기는 한데..."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이건 지정 문화재 감인데요". 적어도 보물이 되기에는 충분하다는 뜻이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이라는 문화재 전문 조사단이 발굴한 이 문화재는 발굴보고서발간이 끝나면 대체로 이 관장이 관할하는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된다. 이번 갈동마을 출토 거푸집은 아마도 국립전주박물관이나 그 상급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될 것이다. 따라서 이 거푸집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설명서가 붙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호. 완주 갈산마을 토광묘 출토. 한반도 처음으로 출토지가 확실하게 밝혀진 세형동검 거푸집". 이 관장으로서는 내심 이 거푸집을 빨리 넘겨받아 문화재 지정 신청을 내고 싶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라 청동기시대 청동기물이니 애착이 더 갈 수밖에. 앞서 말했듯이 이 거푸집은 한반도 최초로 그 출토지와 출토유적이 확실하게 드러난 유물이다. 더구나 세형동검을 만들기 위한 거푸집으로는 첫 출토품이다. 거푸집이란 고고학계 전문용어로는 용범(鎔范)이라고 하는 것으로 금속을 녹여부어서 어떤 물건을 만들어 내는 틀(mould)이다. 돌을 재료로 이용한 이번 거푸집은 세형동검 모양이 뚜렷하게 박혀 있다. 그러니 청동을 녹여 세형동검을 찍어내던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나아가 한반도 청동기문명을 구명하는데 더할 나위없이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청동기물 제조를 위한 거푸집은 지금까지 출토사례가 얼마되지 않는다. 숭실대박물관에는 이와 같은 거푸집이 특이하게도 13점이나 소장돼 있는데 1986년 3월14일 국보 제231호로 일괄 지정됐다. 한데 국보 지정 사유서에는 "활석제인데광복 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전해진다' 함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출토되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당당히 국보로 지정됐다. 이는 그만큼 청동기시대 거푸집 유물이 희소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에 비해 이번 갈동마을 거푸집은 이러한 유물 가운데서도 더욱 희소하기 짝이없는 세형동검의 그것인데다, 무덤에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보물 지정은 떼논 당상인셈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