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미국으로 이주해 현재 뉴욕에서 큰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천경자 화백(79)은 건강이 좋지 않다. 심한 치매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물론 외출도 삼가고 있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오래 전 붓을 놓고 말년에 이국땅에서 불편한 몸으로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살아 숨쉬고 있다. 근래에 와서 이전보다 작품성을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천 화백의 그림은 미술 경기가 피크였던 91년 호당 가격이 5백만원이었으나 최근에 와서 2~3배 정도 뛰었다. 가장 인기 있는 인물 석채(石彩)화 A급은 호당 1천만원에서 1천5백만원이다. 최근에 인물화 3호짜리가 5천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석채화 중 질이 약간 떨어지는 B, C급은 5백만∼6백만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천 화백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린 스케치 작품의 경우 IMF사태 이후 작품당 2백만원에서 3백만원 정도로 거래됐다. 그러나 요즘 경매시장에선 1천만원대로 뛰어 3∼4배 오른 상태다. 말년에 그린 불투명 채색화도 인기가 높다. 최근 2년 사이 거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01년 하반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채색화와 스케치 작품은 19점.이 중 15점이 낙찰돼 낙찰률이 무려 80%에 이르고 있다. 박수근을 제외하면 경매 성사율이 가장 높은 작가다. 천 화백의 A급 인물화는 요즘 없어서 못 팔 정도다. 20년 이상 천경자 그림을 거래해 온 이목화랑의 임경식 대표는 "A급 인물 그림이 있느냐는 화랑과 컬렉터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연결해 줄 작품을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옥션 이학준 상무는 "오래된 컬렉터도 그렇지만 미술품 구입을 하기 시작하는 신흥 컬렉터들이 천 화백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천 화백 작품이 인기를 끄는 요인은 몇 가지로 분석된다. 미술월간지 '아트 인 컬처'의 이규일 대표는 "천 화백은 1년에 몇 점밖에 그리질 않아 평생 그린 그림이 1천점도 안되는 과작(寡作) 작가"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천 화백은 98년 소장하고 있던 작품(93점)을 모두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는 작품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감성에 맞는 그림'(송향선 가람화랑 대표)이며 '우수(優愁)의 아름다움을 독자적인 색채감각으로 표현'(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천씨는 전시회 때 관람객이 가장 많이 오는 5인방(박수근 이중섭 김기창 장욱진 천경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