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4월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한 DNA 이중나선 구조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당시 24세의 청년이었던 왓슨이 70대 노인이 되는 반세기 동안 생명공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식량 산업에서 질병치료, 법의학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생활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인간 복제, 유전자변형(GM) 농산물 문제 등은최대의 논쟁거리.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왓슨은 앤드루 베리와 함께 DNA 이중나선 발견50주년을 기념해 「DNA: 생명의 비밀」(까치 刊. 이한음 옮김)을 펴냈다. DNA 발견과정과 생명의 비밀, 유전에 얽힌 이야기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쓴 대중 과학서. 왓슨은 긴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유전의 예로 '합스부르크 입술'을 소개했다. 턱이 길고 아랫입술이 축 늘어진 이 특이한 형질은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징으로서 근친혼을 통해 23대 동안 보존돼 왔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치적 동맹을 확고히 다지고 폐쇄적인 왕위 계승을 위해 친족간의 혼인을 도모했지만,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의경우 스스로 음식을 씹을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지는 등 유전적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다양한 형태의 유전을 설명하기 위해 흥미로운 학설이 많이 등장했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성교 때 신체 부위의 아주 작은 입자들이 전달되고 그것들이 모여 배아가 만들어진다는 '범생설(汎生說)'을 믿었다.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은 이 학설을 계승해, 각 신체기관이 만든 '제뮬(gemmule)'들이 생식기관에모였다가 성교가 이루어질 때 전달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에 비해 난자나 정자에 완전한 개체인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들어있어이것이 커지면서 완전한 개체가 된다는 '전성설(前成說)'도 있었다. 유전에 관한 다양한 상상과 가설들은 그레고어 멘델(1822-1884)의 실험을 거쳐'염색체'라는 유전물질이 발견되면서 전기를 맞았고 미국을 중심으로 우생학 운동을등장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1933년 독일 나치는 "유전적 결함이 있는 자손 억제를위한 법'이라는 포괄적인 불임수술 법률을 통과시켜 3년 사이 22만 5천 명이 불임수술을 당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전정보 전달물질인 염색체에 관한 연구는 더욱 심화돼,염색체에 들어있는 DNA 분자가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의 4가지염기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DNA 구조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결국 1953년 크릭과 왓슨에 의해 두 가닥의 염기쌍이 나선모양으로 꼬여 있다는'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 지면서 현대 생명공학은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 것이다. 왓슨은 이후 유전자 변형 식품에서 유전자 변형 아기에 이르기까지 유전학이 순수과학을 넘어 거대한 산업분야에 응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복제를 통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인슐린을 대량생산하고 병해충에 강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한편,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DNA를 추적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증명하기도 한다. 개인마다 독특한 서열 형태를 보이는 'DNA 지문'의 분석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사례도 흥미롭다. DNA 지문분석이라는 말을 미국의 일상용어로 만든 사건은바로 1994년 O.J. 심슨 재판. 전처인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친구인 로널드 골드먼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심슨. 수사관들이 범행현장에서 채취한 45개의 혈흔 표본들이 보여준 DNA 증거들은 한결같이 그가 유죄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심슨측 변호인들은 신속하고 치밀한 반박을 펼쳤고 이 반대주장들은 무죄 판결을 얻어냄과 동시에 몇 년 간 법의학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를 남겼다.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DNA 지문이 용의자의 그것과 어느 정도 같아야 '일치한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DNA를 채취하고 분류해 제출하는 절차 자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담배꽁초에 남은 입술 세포로부터도 DNA를 추출할 수 있다면 신뢰할만한 표본의 양은 어느 정도인가. 왓슨은 유전학의 발전이 갖가지 질병의 치료와 예방, 식량문제 등에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때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경고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민족의 우월함을 절대시하면서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나치의 우생학, 1920년대 말 스탈린의 집단 농장정책에 봉사하면서 비합리적인 유전지식을 활용해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소련의 농학자 등이 대표적인 예. 그러면서 저자는 사랑하는 능력이 인간의 DNA에 새겨져 있음을 확신하면서 그사랑을 통해 유전공학의 미래를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464쪽. 2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