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당나라 말기 오대십국의 질풍노도 시대에 23년 동안 재상의 자리를 지킨 풍도(馮道).그가 남긴 '설시(舌詩)'라는 작품이다. 시골뜨기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난세의 격랑 속에서 5왕조 11군주를 섬기며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인물. 불사이군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당시에 그는 변절자와 간신이라는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을 실천하며 백성을 잘 살게 하는 데 매진했다. 그의 철학과 인생을 재조명한 평전 '풍도의 길-나라가 임금보다 소중하니'(도나미 마모루 지음,허부문 외 옮김,소나무,1만3천원)에서 세 가지 명문을 만날 수 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의 시대에 '임금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한다'는 진리를 몸으로 실천했다. 또 영원한 2인자로 불리는 중국 현대사의 주은래처럼 그는 황제에게 칼자루를 겨누지 않으며 백성에게는 덕을 고루 베풀어 '만인과 다투지 않는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 이와 함께 청렴하고 박학다식한 자신의 눈으로 업무와 인력관리에 엄격함을 유지하면서 '매사에 실무를 중시한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21세기라고 해서 세상의 이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역사의 책갈피에서 선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추스리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