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을 중심으로 한 서울 강남 일대에 도읍한 백제가 이미 서기 200년 무렵에 현재의 경기 화성지역에 대규모 제철공장을 운영했음을 알려주는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굴 결과가 나왔다.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은 ㈜풍성주택이 아파트 및 학교 건설을 추진중인 화성시 태안읍 기안리(旗安里) 457의 83 일대에서 이곳에 제철공장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적과 유물을 대량으로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제철 관련 유적으로는 화로유적 10기를 비롯해 도랑유적 12기, 용도미상 구덩이 유적 11기, 숯가마 1기가 있으며, 이곳에서 제련행위가 있었음은 송풍관과 철찌꺼기(슬래그) 같은 유물 다수를 통해 확인됐다. 발굴단은 "이들 제철관련 유적은 복잡하게 중복돼 있는데다 조사지역을 벗어난 곳으로 계속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그 숫자는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발굴단은 이어 "지금까지 확인된 제철공정은 단야(鍛冶)가 대부분이나, 소량의 정련된 철찌꺼기와 유리질처럼 바뀐 송풍관 파편 등으로 보아 정련(精練)단계의 공정도 있었을 것임을 추정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제철유적에서는 특이하게 평양지역에서 집중 확인되고 있는 소위 낙랑계토기가 다수를 점하는 가운데, 풍납동식무문토기를 비롯한 한반도 중부지역 전통 토기가 섞여 있다고 발굴단을 말했다. 이같은 고고학적 발굴성과만으로 볼 때, 기안리 지역에서 제철업에 종사한 사람들 대다수는 낙랑계일 것으로 추정돼, 이를 둘러싼 역사학적 해석을 두고 학계에서 격렬한 공방이 야기될 전망이다. 실제로 중국 서진 시대의 인물인 진수가 서기 280년 무렵에 저술한 사서 「삼국지」에는 「위략」(魏略)이라는 책을 인용, 기원후 1세기에 진한(辰韓)지역 우거수(右渠帥.일종의 수장)인 염사치라는 자가 진한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낙랑인 1천500명을 구출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낙랑 포로들은 땔감을 해 나르는 등 중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묘사돼 있는데, 이 기록에 등장하는 노역은 제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이번 기안리 제철유적은 이같은 '염사치 설화'로 대표되는 한(韓)지역사회에 이미 낙랑인 1천500명을 포로로 잡아다가 제철업과 같은 강제노역에 동원할 수 있었던 강력한 왕권이 출현해 있었음을 실증할 수도 있는 고고학적 증거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발굴단은 "제철은 다량의 원료 및 연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대사회의 정치권력과 상관관계를 갖는 고도의 생산체계를 요구한다"면서 "따라서 이번 유적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정치체의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