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소모적인 논쟁들 중 상당수는 원재료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다. 주꾸미의 경우도 '낙지의 새끼'라는 주장부터 '몸집이 커진 꼴뚜기'라는 의견까지 설이 분분한데 몇 가지의 상식만 머리속에 정리해 놓는다면 평생 주꾸미 박사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낙지와 함께 주꾸미는 문어과에 속하지만,오징어나 꼴뚜기와는 연체동물이라는 사실이외에는 연관성이 없다. 주꾸미를 잡는 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주꾸미의 서식행태를 이용한 '소라방'은 소라껍데기를 줄로 연결하고 바다에 드리우면 주꾸미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 있다가 산채로 잡혀 올라온다. 소라껍데기와 기름값 말고는 거의 밑천이 들지 않는데다 생물로 판매할 수 있어 유리한 반면 어획량이 적다. 물때를 이용해 반강제적으로 끌어올리는 '낭장망'은 물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그물을 진행시켜 대량으로 주꾸미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많은 어획고를 올리지만 대부분이 죽은채로 올라와 상품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주꾸미를 제대로 요리해 주는 맛 집 몇 군데를 알고 있다면 '박사'라는 호칭은 물론이고 계산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질 것이다. ◆쭈꾸미 숯불구이(마포 홀리데이인 호텔 뒤 도화파출소 옆 골목,02-703-1538)=주꾸미 요리에서 둘째 가라면 섭섭해할만큼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숯불구이 집.여기서 숯불구이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른 조리법과 그 맛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방식임에도 고집스럽게 이 스타일을 지켜나가고 있는 이 집은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다. 발갛게 열이 오른 숯불 위에 석쇠를 올리고 잠시 기다리면 양념한 주꾸미를 내온다. 석쇠 하나 가득 주꾸미를 깔고 나면 마치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구워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식욕은 자극되지만 스멀스멀 퍼지는 향을 맞고 있노라면 침샘이 자극되어 양볼 끝이 당긴다. 적당히 구워진 주꾸미 한 점을 입에 넣으면 특유의 육즙이 입안 가득 흘러나와 갯내음을 전한다. 말랑거리는 속살이 특징인 주꾸미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아마도 비결은 된장에 있는 듯 하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만으로 양념을 배합하면 칼칼함은 살아나지만 진득한 맛이 부족한데 된장을 섞으면 맛이 진하고 묵직해진다. 또 한 가지 숯불 위에서 익은 주꾸미를 그릇에 남은 양념에 버무려 먹으면 더 한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주꾸미가 반쯤 없어질 즈음 오징어 호박전과 된장찌개가 나온다. 내용물이 그다지 건실하진 않지만 서비스치고는 훌륭하다. 더 먹고 싶어 머뭇거리면 여지없이 안주인한테서 '더 드릴까요?' 하는 질문이 날아오는데,그저 씩 웃으면 합의가 이루어진다. 맛과 양,가격,서비스 모든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집이다. ◆몽대(여의도 증권거래소 건너편 신송빌딩 지하,02-784 5347)=여의도 일대에서는 '주꾸미 요리의 메카'로 불릴만큼 맛과 질이 뛰어난 전문점.서해안 최대의 주꾸미 집산지인 '몽대 포구(浦口)'에서 주꾸미를 직송하기 때문에 선도가 유난히 뛰어나다. 이 집을 즐겨 찾는 이유는 '주꾸미 샤브샤브' 때문인데 술안주뿐만 아니라 숙취해소용으로도 그만이다. 커다란 냄비에 홍합을 하나가득 내오는 것에서 요리는 시작된다. 뽀얀 홍합육수와 주홍빛 속살은 입맛을 돋우는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 염치 불구하고 두 손으로 홍합 살을 까먹다보면 샤브샤브 접시가 상에 오른다. 깨끗하게 손질된 주꾸미와 맛조개,새우 등의 해산물이 푸짐하고 팽이버섯과 대파가 싱싱하다. 불을 올리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야채를 먼저 넣고 숨이 죽기를 기다려 건져 먹는다. 필자가 개발한 방식인데 이렇게 먹기 시작해야 쉬 물리지 않고 육수에 야채의 단맛이 배어든다. 그 다음 새우와 맛 조개를 넣고 익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주꾸미를 살짝 데쳐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씹을수록 단맛이 줄줄 흘러 정말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는 표현을 실감케 한다. 식사는 샤브샤브 육수에 끓인 소면과 볶음밥이 있다. 두 가지 다 맛있지만 아무래도 소면쪽 손을 들어주고 싶다. 육수에서 배어 나오는 바다 내음이 각별해 국수가 별미처럼 느껴진다. 주꾸미 양념 철판구이도 인기가 있고 부둣가 횟집의 '회 국수'를 연상시키는 주꾸미 비빔국수도 여성 손님들이 탄성을 자아내는 특색있는 맛이다. ◆삼오 쭈꾸미(서대문경찰청 뒤 먹자골목,02-362-2120)=이 집의 주력 메뉴는 '주꾸미 양념구이'와 '전골'이다. 한 가지 메뉴로 20년 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주문한 주꾸미 요리를 먹어 보면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숯불을 이용한 직화 구이는 아니지만 철판 위에서 익어 가는 새빨간 주꾸미들을 보고 있노라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적당히 익힌 구이를 후후 불며 입 속으로 넣으면 매콤한 양념이 골고루 퍼지며 살이 보드랍게 씹힌다. 주룩주룩 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소주 한잔에 주꾸미 구이 생각이 간절해진다. 콩나물을 바닥에 깔고 양파와 양념을 가미해 얼큰하게 끓여내는 '주꾸미 전골'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다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야채 사이에 숨어있는 주꾸미의 양은 많지 않지만 국물은 끝내준다. 칼칼하면서도 단내가 짙게 묻어나 숟가락질을 서두르게 된다. 쪼그라든 주꾸미를 건져 먹고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난 후 밥을 말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진다. 저렴한 가격 때문일까,맛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문도 2인분 이상만 받는 탓에 조용히 해장을 하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유진·맛 칼럼니스트 showboo@dreamwiz.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