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의 본섬이라 할 수 있는 혼슈 서부의 효고현은 우리가 떠올리는 일본의 전형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 할 수 있는 곳이다. 사무라이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여졌던 고성과 전통 목욕법을 체험하는 온천,신사,사찰등은 물론 수세기에 걸쳐 전통주 사케 제조법을 이어오고 있는 양조장 등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옛 시간을 더듬어 보는 효고현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도시로는 단연 고베와 히메지를 들 수 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아카시 해협에서 시작된 진도 6.9의 강진이 고베를 덮쳤다. 한 차례의 강진과 뒤이은 수 백 차례의 여진으로 그야말로 쑥밭이 되어버린 고베.10만 여 채의 건물이 파괴되고 5천 여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구두주걱처럼 좁고 길게 뻗은 시가지여서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이 날의 대 지진은 고베를 세계인들에게 더욱 강하게 각인시키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신속한 피해복구로 지금은 어디에서도 당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오히려 더욱 기민한 안전대책을 마련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물론 고베는 이미 일본 제2의 무역항으로,고풍스러움이 한껏 묻어 나오는 관광 도시로 유명한 도시였다. 8세기 이후 줄곧 중국,한국 등과 활발한 교역을 유지한 일본 서부의 중심항.1868년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되었을 당시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한 항구 역시 고베였다. 중국인과 한국인을 비롯해 유럽인,미국인,인도인이 뒤섞여 그야말로'지구촌'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시작한 것은 그 뒤였다. 지금도 이 흔적은 여전한데 대규모 외국이주민촌이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지어진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주요 관광 명소로 대접받고 있다. 대표적인 거리가 키타노초.메이지시대 초기 이주해 온 외교관과 외국 거상들이 조성했던 주택단지이다. 독일인 건축가가 세운 중후한 벽돌 건물과 미국총영사였던 헌터 샤프의 저택 등 독특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은 이 거리를 걸으며 사진을 찍거나 저택의 외관을 감상하면서 고베시의 옛 자취를 더듬어 보게 된다. 기타노초와 상반된 이미지로 초현대적인 미감을 전하는 아카시 해협 대교가 니시고베 지역에 있다. 총 길이 3,911m.현수교로서는 현재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 1998년 개통된 이 다리의 압권은 야경.은은한 외관 조명에 감싸인 다리가 검푸른 밤바다에 비치면 진주빛을 띤다. 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펄 브리지'.높이 119m 의 회전식 전망대는 마이코타워에서 바다와 도시,그리고 아카시 해협 대교가 어우러진 풍경을 지켜보기에 최적이다. 현재와 과거를 한꺼번에 맛보는 항구도시 고베가 한 눈에 들어와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들이 어김없이 찾는 또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 히메지 시는 무엇보다 히메지 성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일본 전역에 산재한 12개의 봉건 성 가운데 가장 웅장한 규모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를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 매김하게 해 준 1985년 작'난(亂)'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히메지 성이 더욱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 성은 5층 규모의 본채를 중심으로 정원과 무기고,곡식창고 등 완벽한 방어 요새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원래 절벽 위의 이 성이 요새로서의 역할을 시작한 것은 1333년.이후 1581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새에 3층 본채를 신축했다. 1600년 도요토미가문이 멸망하게되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의 사위에게 이 성을 하사하기에 이른다. 지금의 5층 규모 본채를 갖게 된 것도 그의 사위가 남긴 업적.1609년에 본채가 완성되면서 히메지 성은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적인 본부로서 군림하게 된다. 성 곳곳을 둘러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공주와 첩들의 거처였던 장식탑과 본채 내부를 비롯 16세기 당시의 조총과 화약,장검 등 무기를 전시해 놓은 무기 박물관 등을 더듬어 보게 된다. 특히 살벌한 성곽의 외관과는 달리 더없이 아늑한 9개의 성안 정원들은 한적한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물론 적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만든 가짜 문과 통로는 주의해야 한다. 패퇴할 경우를 대비해 따로 만들어 놓은 자살 구역과 성채를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한 부채꼴의 성벽 등 곳곳에서 치열한 전장의 분위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공성전에 대비해 성 주변에 파 놓은 해자는 이제 잔잔한 연못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잠시 빠져 나와 숨을 고를 요령으로 들른 곳은 시립 미술관과 히메지 문학관. 이 지역 출신이거나 인연이 깊은 작가들과 일본 주요 작가들의 작품과 근대문학에 주요한 업적을 남긴 9명의 일본 문인을 소개 한 곳이다. 글=남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