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효서의 소설은 우리들 인간세상의 고통과 슬픔, 부조리를 우의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담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설가의 사는 모습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양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며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유목민'으로 평가받는 구효서가 5번째 소설집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세계사)를 냈다. 이번 소설집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를 치열하게 들추어내지 않는다. 대신 그의 눈길은 개인의 상처와 일상의 소소한 사건으로 향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작가는 "알리거나 최소한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소설을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삶 자체의 눈물겨운 풍경들에 무작정 발끝을 채여 덩달아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을망정,생의 비의를 파헤치려는 치열성 따위에는 미련이 없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표제작 '아침 깜짝…'은 여행사 홍보실장인 주인공(정길)이 미국여행 중 알게 된 젊은 여성 가이드(미르)와의 인연을 다룬 작품이다. 미르는 정길이 오래 전에 헤어졌던 첫사랑의 딸이자 자신의 딸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모른다. 작품 후반부에 가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또 얼마나 경이로운 것이던가'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시간을 되돌리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만 현실을 인정한다. 때로는 그냥 놔두는 것이 되돌리는 것보다 좋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거나 사건의 복선을 위해 중요 모티브로 등장하던 나무나 새, 소리 등이 이번 소설집에선 무거운 상징성의 외피를 벗고 자연스럽게 그려진 점도 특징이다. '아침 깜짝…' '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자' '가을비' 등의 작품에서는 나무가,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정주' 등에서는 소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징물로 나오지만 개인의 마음이나 자연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숭실대 이재룡 교수는 이에 대해 "구효서의 상징물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녹아있으며 이제 그의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에서 개개인의 상처로 조금씩 옮겨졌다"고 말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