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9시30분쯤 충남 보령 인근의 21번 국도.잿빛 승복에 선글라스를 낀 수경 스님과 검은 옷에 수염이 덥수룩한 문규현 신부가 길 위를 걷고 있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합장한 채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서울을 향해 가는 중이다. 방조제 공사가 진행중인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서다. 지난달 28일 새만금 사업이 진행중인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을 출발한 지 19일째.해창 갯벌에서부터 90㎞ 가까이 되는 길을 이렇게 왔다. 삼보일배로 하룻동안 가는 길은 6㎞ 안팎.하루 평균 3천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두 성직자의 무릎은 벌써부터 고장이 났다.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3백5㎞.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길이지만 수경 스님은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이 무슨 역설일까. 수경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새만금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내용이 바뀌고 탐진치(貪瞋痴) 3독심을 극복하는 노력이 사회의 흐름으로 형성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욕심껏 다 먹고 쓰고 해서는 새만금 갯벌을 지켜낸다 해도 다른 곳에서 또다른 생명파괴가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삼보일배 참회정진은 결국 너와 나 모두가 살기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4월이라지만 초여름 날씨처럼 햇살이 따갑다. 순례단의 뒤를 따르면서 합장한 채 세 걸음마다 허리를 굽히는 반배(半拜)만 해도 곧장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러나 앞장을 선 두 성직자의 자세에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20분간의 정진 후 진행팀의 선두를 맡은 리더가 '10분간 휴식'을 선언하자 두 성직자는 길 옆에 깔아놓은 자리에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새카맣게 탄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진행팀이 팔다리를 풀어주는 동안 "하실만 하냐"고 묻자 수경 스님은 "처음엔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그랬는데 이젠 편안해"라고 했다. 이날 삼보일배로 진행한 거리는 7.5㎞.아침에 웅천읍의 천주교 공소를 출발해 저녁에는 보령시 남포면사무소 앞 공터에 잠자리를 폈다. 지친 몸을 뉘며 다리를 펴던 문 신부는 "생명과 죽음 가운데 중립이란 없어요. 온 힘을 다해서,기어서라도 서울까지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보령=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