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수호지」「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 기서(奇書)로 불리는 「서유기」(西遊記)가 완역된다. 이번 완역은 지난 99년 대산문화재단이 실시한 외국문학 번역공모에 응한 임홍빈(任弘彬.63)씨가 3년여를 공들인 결실로, 금주중 1-3권이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7월까지 총 10권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완간될 예정이다. 당시 재단이 「서유기」 완역에 내건 지원금은 500만원. 재단 관계자는 "솔직히 500만원에 「서유기」에 도전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임 선생께서 응모를 해 오히려 우리가 당황하고 미안했었다"고 말했다. 이번 완역본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옮긴이 해제 600장을 포함해 총 1만6천장에 달한다. 대산재단이 지원하는 대부분의 번역사업이 그렇듯 이번 「서유기」에도 세 가지 원칙이 적용됐다. 첫째, 원전 텍스트를 저본으로 삼는다. 둘째, 전문인력을 활용한다. 셋째, 현재의 살아 있는 한국어로 번역한다. 「서유기」는 이러한 원칙, 그 중에서도 특히 첫번째 원칙이 가장 돋보이는 결과물로 꼽힌다. 그 까닭은 해방 이후 「서유기」 번역이 약 5종이 나왔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원적'이 실종돼 있다.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했는지 밝히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임의대로 분량을 삭제하거나, 일본어 번역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번 번역본은 원전 확립에 주안점을 뒀다. 임씨는 '신각출상광판대자서유기'라는, 명나라 만력 15년(1587)을 전후해 화양동천주인(華陽洞天主人)이라는 사람이 교열하고 금릉(金陵.난징) 세덕당(世德堂)이란 곳에서 출판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물론 이것을 원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유기」는 여타 중국 기서가 대개 그렇듯이 원전이 없기 때문이다. 몇 백년을 흐르면서 시대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삭제.개변.추가된 결과물이 바로 「서유기」이기 때문이다. 또 치밀한 교정을 거친 문헌이 아니기에, 판본별로 차이가 엄청난 경우도 더러 있다. 현재 중국에서 전해지는 어느 「서유기」 판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구절이 조선에서 편찬된 중국어 회화교재인 「박통사언해」에 남아 있기도 하다. 이는 「서유기」의 정본(원전)을 확정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실정에서 그래도 가장 권위있고 가장 널리 읽힌 판본을 중국어 원어에서 직접 번역했다는 점에서 이번 「서유기」 번역이 갖는 의의는 남다르다. 이러한 「서유기」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봉착한 또 다른 큰 난제로 옮긴이는 종교 문제를 들었다.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떠나는 삼장법사를 필두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사건을 꾸려가는 「서유기」는 흔히 불교적 작품으로 알기 쉬우나 실은 도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손오공만 해도 요괴 출신인데, 이러한 요괴는 동진시대 도사 갈홍이 찬한 「포박자」라는 문헌에 벌써 무수한 종류가 출현하고 있다. 요괴뿐 아니라 도교를 장식하는 무수한 신(神)들, 예컨대 옥황상제나 태상노군 등이 등장하고 있다. 임씨는 "이번 번역 작업을 진행하면서 너무 많은 공부를 했다"면서 "판타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소재 정도로만 알려진 「서유기」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각권 360쪽 내외. 각권 8천500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