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황창배 화백은 생전에 '한국화의 이단자'로 불렸다. 황 화백은 먹과 아크릴,화선지와 캔버스 등 동·서양 재료를 혼합해 역동적이고 자유분방한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열었다. 그의 작고 2주기를 맞은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무법(無法)의 신화(神話)'를 주제로 1980년대 초부터 췌장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그의 작품이력을 보여주는 회화 서예 등 55점이 전시 중이다. 서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나온 황 화백은 월전(月田) 장우성 화백으로부터 한국화를 배우고 철농 이기우 선생에게서 서예를 익혔다. 하지만 그는 기존 틀을 깨는 파격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변화로 예술의 불꽃을 뜨겁게 지펴 올렸다. 황 화백은 평소 "에너지는 쓸수록 강한 힘을 발휘해 구르는 눈덩이처럼 큰 힘과 속도를 낸다"고 강조했다. 평론가 서성록씨는 그의 작품 추이를 민화 요소가 가미된 설화적 내용의 시기(1980년대 초∼80년대 후반),색면의 강조로 발전된 시기(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소재의 다양성과 평면의 역동성이 두드러진 시기(90년대 초반∼90년대 말) 등 세 단계로 압축했다. 황 화백은 그림뿐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이 깊어 출연작품이 10여편에 달했다. 동덕여대 경희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쳤던 그는 1991년 전업작가가 되겠다며 교단을 물러난 뒤 TV에 광고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의 일탈과 파격으로 인해 미술계에는 한동안 '황창배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5월4일까지.(02)732-6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