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탄 반도의 주도(州都) 메리다. 마야의 옛 도시 치첸 이트사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120여km 떨어진 치첸 이트사까지는 자동차로 약 2시간. 잠시 짬을 내서 나선 시내 관광은 치첸 이트사의 전주곡에 다름 아니다. 마야 박물관을 비롯해 슬픈 식민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는 당시의 건물 등 때문이다. 물론 멕시코 전통 복장을 차려 입은 악사 마리아치의 연주를 거리에서 만날 수도 있다. A.D 450년 경 이트사족이 건설하기 시작한 신전도시로 치첸 이트사는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욱스말과 더불어 마야 문명의 주요 고대도시로 손꼽히는 치첸 이트사. 8㎢에 이르는 넓은 유적지는 그 뒤 7세기 경까지 신전을 중심으로 한 취락지 건설이 계속되었다. 그 뒤 3백 여 년 동안 버려진 도시가 되기도 했지만 10세기에 이르러 도시의 재건이 착수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의 종교와 유카탄 지역의 정치 중심지로까지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깃털 달린 뱀(케찰코아틀)을 숭배하는 종교가 들어온 12세기 이후로는 최고의 번영을 누리며 뛰어난 신전과 주거 건축물들을 세우기에 이른다. 유적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카스티요. 성이란 의미를 지닌 이 조형물은 피라미드 형상에 그 정점에는 제단을 두고 있다. 카스티요의 규모는 흔히 알려져 있는 멕시코 고원의 해의 피라미드나 달의 피라미드에 비해서는 작은 편. 하지만 건물 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는 심오하기만 하다. 뱀의 신전으로 쓰였던 곳이니 만큼 커다란 뱀의 두상이 정면 계단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의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은 몸통이 되는 셈. 꼬리는 신전 들보로 이어지는데 매년 춘분과 추분이면 오후 4~5시경 신비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태양이 피라미드 난간을 비추게 되면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 피라미드의 측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데 원주민들에게는 마치 매년 뱀이 허물을 벗으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의미로 통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뱀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때를 춘분과 추분에 정확히 맞춘 점도 경이롭다. 건축물 하나까지도 수준 높은 천문학과 역법을 담고 있음은 네 방향으로 나 있는 정상으로의 계단은 각각 91개, 모두 364개라는 사실 역시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정점의 제단을 합하면 정확히 1년 365일. 가파른 계단은 오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지만 여기에 올라서면 유카탄 반도의 시원한 밀림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야 문명의 신전은 대부분 우주를 관장하는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쓰였던 공간. 하지만 그것은 주기가 다해 지친 태양에게 신선한 피를 공급하기 위해 인신공양의 제사였다. 펠로타라는 공놀이로 가장 힘센 이를 골라 내 그의 심장을 바치는 방식. 작은 고무공을 패스하며 골대로 달려가는 갑옷 차림의 선수들. 지금의 미식축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펠로타의 최후 승자는 곧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신공양의 제사를 지냈던 또 하나의 유적이 피라미드 북쪽의 연못 세노테이다. 지름 60m 정도의 제법 커다란 이 연못은 비의 신 차크가 살고 있는 곳으로 원주민들에게 숭상되었던 성지. 가뭄이 들 때면 어린이나 처녀를 산 채로 빠뜨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중엽 미국의 고고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금은 장신구들과 차크신상, 10대 소년 소녀들과 젊은 여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전사의 신전, 재규어 제단, 천문 관측소, 수도원 등 많은 유적들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유적지는 15세기 무렵 갑자기 황페화 된다. 그 뒤 스페인인들이 잉카와 마야 문명을 정복하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1546년 유카탄 지역을 비롯한 마야 문명지의 지도자들로부터 복종의 맹세를 얻어내며 완전한 정복을 이루어 낸 시기를 전후해 발굴은 본격화되었다. 하지만 발굴을 넘어서 거의 파괴에 가까웠다. '미개인'들을 종교의 힘으로 귀화시키려던 선교사들은 신전을 파괴했고 태양신을 믿거나 인신공양의 풍습을 이행하는 이들을 화형시켰다. 스페인의 군인들은 왕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 유적지를 파헤치며 황금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련의 유물 파괴와 약탈은 이후 19세기를 넘기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 백년간 지속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멕시코 정부와 세계의 학자들이 본격적인 유적지 보호에 나서게 된다. 이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치첸 이트사 유적은 마야인들의 뛰어난 문명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힘과 정복에 집착한 인간의 교만을 반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통하고 있다. [ Travel tips ] ◇ 가는 길 =멕시코에서는 직항편이 없는 탓에 미국을 경유하는 편이 가장 일반적이다. 보통 인천-샌프란시스코간 항공편을 이용한 뒤 여기서 멕시코 캔쿤 공항행 항공편을 이용한다. 샌프란시스코-캔쿤간 소요시간은 약 6시간. 칸쿤에서 메리다까지는 차량으로로 3시간, 여기서 치첸 이트사까지는 다시 2시간 소요. 문의: 멕시코대사관(02-798-1694 www.visitmexico.com) < 글 = 남기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