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은 식목일이자 24절기중 5번째인 청명이죠.
이때부터 농부들은 밭갈이할 채비를 한답니다.
물이 부족한 논에는 모내기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 '논물 가두기'도 하고요.
청명이 지나면 '삐삐'라고 불리는 띠(牙)의 어린 순이 돋아나죠.
군것질 거리가 없었던 옛날엔 아이들이 뽑아먹던 최고의 간식이었답니다.
안국사고려 충렬왕 3년 월인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안국사는 조선 광해군 6년(1614)에 증축되었다. 승병들이 안국사에 머물며 적상산사고의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현재 안국사의 자리는 그보다 작은 절이던 호국사(지)가 있던 곳으로 1980년대 적상산에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며 현 위치로 옮겼다. 안국사는 호국사지로 옮겨오며 일주문, 호국당 등을 이전 복원했다.전북 무주군 산성로 1050
적상산사고지유구1614년(광해군 6) 적상산성 안에 실록각이 세워졌으며 새로 편찬된 <선조실록>을 1618년 처음으로 봉안했다. 이후 1634년(인조 12)에는 묘향산사고에 보관한 <조선왕조실록>을 이안하고, 1641년 선원각을 세워 왕실 족보인 <선원록>까지 소장하며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했다. 적상산사고는 원래 위치에서 적상호가 바라보이는 위 기슭으로 이전해 1997년 선원각이, 이듬해 실록각이 복원되었다. 오늘날에는 전시관으로서 내부에 태종·세종·인조·영조 실록 등의 영인본(복제 인쇄물)과 당시 실록 봉안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등을 만날 수 있다.전북 무주 적상면 산성로 960
무주 적상산성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사방을 둘러싼 적상산은 해발 1038m로 적상산성과 안국사, 적상산사고지유구가 정상부에 자리한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서 여러 고을의 백성이 적상산에 피란해 고려 후기 산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시대에는 산성 내에 적상산사고를 설치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다.전북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