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기발한 스토리…웃음과 공포는 '덤'..'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감독)는 한국영화의 족보에 새 성씨의 시조가 될 것이다.

코미디 스릴러 멜로 SF 호러 등 각 장르영화의 특징들을 섞어 "돌연변이 혼합장르"로 거듭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비슷한 시도들은 완성도의 부족으로 시조로 불러주기 어렵다.

이 영화는 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스토리로 웃음과 공포를 번갈아 주면서도 뚜렷한 메시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에 누구의 편에도 설 수 없다.

객석과 작품간에 놓인 이런 거리감은 흥행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평단이나 영화팬들에게 회자될 것이다.

영화팬을 자처한다면 "볼만한 영화목록"에 추가할 만한 작품이다.

강원도 한 탄광촌에서 마네킹을 만들며 살아가는 병구(신하균)가 순이(황정민)와 함께 화학공장의 강만식사장(백윤식)을 납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병구는 여자친구의 죽음과 혼수상태에 있는 어머니 등 자신의 불행이 지구침공을 노리는 외계인의 음모 때문이며 강만식은 안드로메다에서 태어난 외계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넌센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적인 센스"로 바뀐다.

외계인을 다룬 SF 소재지만 첨단 기기들이 등장하는 할리우드영화와 달리 아날로그적 유물과 정서들로 꾸며져 있다.

병구의 비밀기지국은 허름한 연구실 수준이며 첨단기기라야 고문의자가 눈에 띌 뿐이다.

첨단 복장은 트랜지스터부품이 장식된 광부들의 안전모와 싸구려 티가 나는 망토다.

고문기구도 때밀이 수건과 물파스,다리미 등이다.

병구로 대변되는 지구인과 지구문명이란 이처럼 허술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지구수호에 대한 너무나 진지한 소명의식으로 태연자약하게 고문의 강도를 높이는 병구는 죄의식없이 폭력을 자행하는 지구인의 악마성을 대변한다.

병구가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강사장은 발가벗은 채로 골프연습을 하거나 여배우들과 난봉피우기가 취미인 사회악의 표본이다.

납치된 강사장의 행방을 추적하는 경찰도 공훈에 눈먼 속물들이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사이코 아니면 속물,얼간이들이란 관점에서 이 영화가 인간에 던지는 시선은 대단히 싸늘하다.

영화의 묘미는 "공포와 웃음"이란 이질적인 요소를 한장면에 잡아내는 연출력에 있다.

병구와 순이가 때밀이수건으로 강사장의 발등을 문지른 뒤 물파스를 바르자 강사장은 고통스런 신음을 한껏 높인다.

관객은 이 험악한 장면에서 박장대소한다.

"천진난만한 광인"같은 주인공 신하균의 연기도 관객에게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준다.

또 걸작들을 치환한 패러디들이 "영화읽기"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전체 구도는 납치극을 다룬 "미저리"를 연상시키지만 납치된 자의 시점(미저리)이 아니라 납치한 사람의 시점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조인간보다 더욱 폭력적인 인간성이 이 영화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다.

"젤소미나"란 별명을 갖고 있는 순이는 명화 "길"에서처럼 짝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는다.

인류역사를 설명하는 유인원들의 도구사용 장면은 "2001 스페이스오딧세이"에 대한 경배로 보인다.

4월4일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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