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단의 낭만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로시인 조병화씨가 지난 8일 82세로 타계하자 문학평론가 김재홍(경희대 교수.56)씨는 "고인은 시를 통해 전후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위안을 준 우리 시단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면서 "대중들에게 친근하고 소박한 시를 썼던 조 시인의 시세계는 다작으로 인해 잡석(雜石)이 적지 않지만 놀라운 직관의 세계를 보여주는 보석같은 시도 많다"고 문학적 성과를 평가했다. 김씨는 "고인은 고집이 세고 직선적 성격을 가졌지만 문학적 안목은 포괄적이었다"면서 "생전에 자신의 호를 따서 제정한 편운문학상은 후배 문인들을 도우려는 장학금 성격이 짙었고, 수상자도 창비(창작과 비평) 계열의 조태일 시인이나 문지(문학과 지성) 계열의 김광규 시인 등 이념적 성향을 가리지 않고 두루 걸쳐 있었다"고말했다. 고교 교사, 대학교수, 시인협회 회장, 문인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장 등 교육계와 문화예술계의 원로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고인의 폭넓은 사회활동을 증명하듯 경희의료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휴일인데도 문인들과 학교 제자들로 붐볐다. 수필가 조경희(예술원 회원.85)씨는 "평소 누나라고 부르며 따랐고 생일 때도항상 불러줬는데 먼저 세상을 떠나 슬프다"면서 "5년 전 부인이 세상을 먼저 떠난난 뒤 매우 외롭고 쓸쓸해 했다"고 말했다. 원로시인 김규동(78)씨는 "고인은 비록 고집은 있었으나 남과 다투기를 싫어해양보를 많이 했고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면서 "부산 피난시절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서울서 신작 시집 「패각의 침실」 1천부를 싣고 내려와 이 가운데 100부를내게 주며 팔아서 쌀을 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김 시인은 "그의 시집 100권을 서점에 넘겨 두달치 식량을 샀다"면서 "어려운후배들을 학교에 취직시켜 준 적도 많고, 그림 전시회에 가면 반드시 작은 그림이라도 구입해 화가들을 도우려 했다"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그는 책을 둥그렇게 말아 그 속으로 본 풍경을 시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서 "그는 '복잡한 이야기는 안 쓴다. 아름다운 풍경만 시로 쓴다. 나는 그런 시인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시인 김대규(61)씨는 "다투고 따지는 것을 싫어했던 고인은 자유를 누리며 산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였는데 세상을 떠나니 적막감이 크다"며 애도했다. 시인 감태준(중앙대 예술대학장.56)씨는 "고인은 젊은 시인들이 겪는 어려움을잘 이해했고 늘 자상했다"면서 "1980년대 세계시인대회에 초대받은 고인께서 항공권을 내게 건네줘 그리스.터키 지역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제자인 소설가 고원정(47)씨는 "선생은 제자들에게 '문인은 전인적인 멋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선생의 파이프 담배와 멋잇는 옷차림을 통해 1970년대 캠퍼스의 낭만이 떠오를 때도 있다"면서 "경희대에 계실 때 졸업생들을안성 난실리에 있는 선생의 편운재에 1박 2일간 초대하던 전통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후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서기원, 허영자,이일향, 박이도, 허형만, 김정수, 김형경씨 등 문인 100여명이 이날 조문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