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철학""천문학""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서구문화의 뿌리"인 그리스문화는 역설적으로 비서구적으로 비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유럽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가족주의 전통을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엘 즈윅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나의 그리스식 웨딩"(My Big Fat Greek Wedding)은 미국에 사는 그리스계 여성과 백인남성간의 결혼을 통해 그리스의 가족주의 문화와 주류 백인 사회의 개인주의 문화간의 갈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른바 "샐러드볼"(모듬야채)이란 말로 일컬어지는 다인종 미국사회의 특징을 세밀화처럼 그린 이 영화는 북미지역에서 총 2억4천만달러의 기록적인 흥행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그리스계 여성 툴라(니아 바르달로스)를 사랑하는 앵글로색슨계의 청교도(WASP) 청년 이안 밀러(존 코벳)가 툴라가족의 요구대로 까다로운 그리스식 풍습을 따라가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결혼의 장애물이 결혼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인" 사윗감을 원하는 신부측 아버지와 가족들이란 설정은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로서는 파격격이다. 그리스인들의 가족애는 이안의 관점에서 보면 징그럽도록 친절하고,끈끈하며,복잡하다. 이안은 청교도가정에서 자랐지만 결혼을 위해 그리스 정교식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식 결혼식은 대단히 성대하다. 신부의 들러리들마저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옷을 입고 나설 정도로 일가친척들이 모두 참여한다. 또 "죽인다"(Kill)는 말을 친근한 표현처럼 사용하는 그리스인들은 이안에게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미국사회에서 지배계층인 백인이 피지배층이자 소수민족인 그리스식 풍습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이 백인들에게는 웃음을,소수민족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특히 백인의 주류 문화를 하찮게 보는 툴라의 아버지 거스의 문화적 자신감은 모든 소수인종에게 청량제로 다가온다. 이는 미국사회의 변화상을 예리하게 짚어낸 것이다. 과거 성공한 미국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WASP"가 이제는 배타적,평균적,비창조적이란 경멸적인 말로 바뀌고 있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전근대적으로 치부됐던 가족주의를 재발견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토록 만든다. 서구사회에서 "가족콤플렉스"에 시달려 온 툴라는 결국 전통에 얽매이지 않지만 본모습을 지켜감으로써 "더불어 사는" 해법을 제시한다. 조연 캐릭터들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그리스문화 지상주의자인 거스는 "세상은 그리스인과 그리스인이 되고픈 사람으로 나뉘어 있다"든지 "세상의 모든 언어는 그리스말에서 유래된다"며 일본 기모노까지 그리스말로 어원을 설명하려 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가장이 머리라면 아내는 목이다.머리는 목이 움직이는대로 돌아간다"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툴라의 어머니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추진함으로써 진정한 현명이 무엇인가를 상기시킨다. 14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