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족 언어를 지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경제의 논리를 오래 거스를 수는 없다. 사람들은 편리한 것을 쓰게 마련이고, 어떤 이유에서고 경제의 논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나 사회들은 뒤질 수밖에 없다." 복거일씨가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삼성경제연구소)를 내놓았다. 그는 이미 지난 98년에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로 한국 사회에 영어 공용론의 불씨를 지핀 바 있다. 처음에 엄청난 비난을 받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영어 공용화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영어는 미국의 부침에 관계없이 국제어로서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는 '망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영어를 중심으로 중심부와 주변부가 확연히 나누어지는 세상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영어 공용의 비용은 모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지불해야 하지만, 그 혜택은 후대에서 받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건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고 이익은 별로 남지 않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경제논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무역수지의 42%인 46억달러 정도가 해외 유학과 연수 비용으로 지불됐다. 게다가 젊은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영어 교육은 이미 과열 상태다. 왜 그런가. 자식세대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국제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거일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 적에 자신이 중대한 결정을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한 언어를 모국어로 삼게 마련이고, 그 결정을 평생 취소할 수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아서 나올 혜택은 거의 모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후손들의 처지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결정돼야 옳다." 언어는 민족주의적 시각과 곧잘 결합된다. 이 책을 덮으면서 감정을 누르고 자식들 세대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공병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