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횃불이 집채만한 나뭇단에 옮겨지자 불길은 순식간에 용이 승천하며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거세진다. 홀로 세상을 비추던 보름달마저 그 기운에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 하나씩을 달과 불에 털어놓는다. 한국의 2월 축제는 정월 대보름의 화려한 불놀이로 시작된다. 설이 새해를 맞이하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면 정월 대보름은 무사안일과 풍년을 기원하며 한 해 살이를 본격적으로 준비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인지 정월 대보름 벌어졌던 민속 축제는 유난히 불을 이용한 것들이 많다. 건강과 재산이 불길처럼 크게 일어나기를 상징하는 탓이다. 정월 대보름 축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단연 제주 들불 축제이다. 북제주군 애월읍 새별오름(제주의 기생화산 주변에 형성된 작은 산)에서 지난 1997년부터 시작된 후 올해로 7회째를 맞고 있다. 올해는 2월 14일부터 15일까지 열릴 예정.20만평의 행사장에 매년 국내외 관광객 15만 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원래 제주 들불 놓기(방애)는 가축을 방목하던 오름을 불태워 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겨울에 벌였던 행사.이를 축제로 끌어올려 국내 최대의 정월 대보름 행사로 자리잡았다. 역시 제주 들불 축제의 백미는 불놀이에 있다. 14일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불씨와 달집을 만든 뒤 15일 불태우게 된다. 보름달이 뜨는 것과 동시에 10만 여 평의 오름에 불이 놓여지고 높다란 달집도 거대한 불기둥이 된다. 온통 불로 뒤덮인 오름과 하늘.그 사이 아이들은 추억을 곰씹으려는 어른들을 따라 쥐불놀이를 시작하며 화려한 화환(火環)을 공중에 그려낸다. 요즘 아이들에게 쥐불놀이를 하며 외치던"망월이야!"라는 말은 생소하기만 하지만 나무나 숯을 넣은 깡통을 돌리는 것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신나는 놀이.이 즈음 사람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달맞이 강강술래를 시작한다. 풍물패의 흥겨운 가락도 오름 가득 울려 퍼지고 신이 난 불길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전통마상.마예공연,듬돌 들기,풍년 기원제,소원기원 띠 달기,연날리기,조랑말 타기,윷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함께 펼쳐진다. 북제주군과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산다시와 중국 래주시의 공연단도 참가해 풍요를 함께 기원해 줄 예정.향토 장터가 민속음식과 토산품을 타지 손님들에게 선보이게 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무엇보다 달빛에 출렁이는 억새 숲과 야트막하게 솟은 오름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제주의 풍경이 겨울 여행의 추억을 더해 준다. (064-741-0221) 해운대 해변에서 펼쳐지는 달맞이 축제도 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민속행사 가운데 하나. 정월 대보름 밤 넓은 백사장에 5층 건물 높이의 대형 소나무 달집에 불을 놓는 것으로 축제는 절정을 맞는다. 이 때 모이는 시민,관광객은 30만 명.올해로 21회 째를 맞아 규모나 역사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대규모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길놀이,지신밟기,농악놀이,강강술래,민요제,무용제,비나리 등이 함께 열린다. 해운대구청 문화관광과 최수동씨는"올해는 특히 촛불 기원제와 쥐불놀이를 새롭게 선보여 더욱 흥겨운 축제가 될 것으로 본다.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참뜻을 더욱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051-741-4001) 인삼의 고장 충남 금산에서도 달맞이 불 축제가 열린다. 금산읍 양지리 장동마을에서 열리는 장동 달맞이 축제가 그것.길놀이로 시작해 생솔가지를 쌓아 올린 달집에 불을 놓는 달불놀이 등 전통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장동 달맞이 축제는 마을 단위의 민속 행사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대표적인 사례.그래서 달집을 태우기 전 산제와 탑제 등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들이 엄숙하게 거행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축제에 필요한 음식 등은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마련하는 등 전통적인 공동체 축제의 전형을 지금껏 유지해 오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달 마시기와 달 불에 고구마 구워먹기 등 재미있는 놀이들이 함께 열리는 장동 달맞이 축제는 오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열린다. (041-750-2225) 글=남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