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의 폐해’, ‘남녀의 양육의 책임의 한계와 허용 범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워라벨의 균형감’, ‘우울증과 노출증 같은 현대 사회의 정신적 감정적 질병’…….패션 칼럼에서 다루기엔 너무나도 심각하고 진지한 이 주제들을 트렌치 코트를 다루면서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탁월한 방수성은 물론 스타일 측면에서도 인정받아 민간에 큰 인기를 끌어 고안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트렌치 코트! 이 의미심장하고 중차대한 옷은 살아남아 사랑 받은 기간만큼이나 깊고도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가장 먼저 대두되었던 질문,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폐해는 무얼까? 심각하고도 무시무시한 거시적인 이야기들이 백만 가지쯤 쏟아지겠지만 절절한 옷 애호가(라고 쓰고 옷 환자라고 읽는다)인 필자에겐 트렌치 코트를 입을 날이 줄어든다는 매우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폐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단적인 계절 변화로 소위 간절기, 아니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은 이제 존재감을 찾기 어려워졌다. 아직 찬 바람으로 얇은 옷을 위에 뭔가를 걸치고 싶은 계절, 해가 짧아 커진 일교차로 아침 저녁으로는 꽤나 쌀쌀해 아우터가 반드시 필요한 확연한 봄과 가을 날씨가 도합 일 년에 너 다섯 달은 되던 시절엔 트렌치 코트가 제 노릇을 톡톡히 했더랬다. 낮이 되어 확연히 따뜻해진 날씨를 느끼며 한 팔에 척 걸어도 기분 좋은 트렌치 코트는 꽃놀이 갈 때 꼭 챙겨뒀어야 하는 옷이건만 이제 대한민국 멋쟁이들의 옷장에서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말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치 코
연극 ‘욘’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고독하다. 그 뿌리는 욕망과 집착에 있다.'현대극의 아버지' 입센의 만년작인 이 작품은 한 가정의 아들을 두고 벌어지는 싸움을 그린다. 젊은 시절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모든 명예과 돈을 잃은 욘은 다락방에 박혀살며 홀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의 아내 귀닐은 아들 엘하르트가 무너져내린 가문을 다시 일으키길 바란다. 귀닐의 언니이자 욘의 과거 애인인 엘라는 엘하르트를 자기 아들처럼 키워 자신의 성씨를 물려받길 원한다.이 세 명은 엘하르트를 놓고 다툰다. 엘하르트를 통해 각자의 욕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면서다.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 회복하고, 어머니는 가족의 위상을 세우고, 이모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아들이 돼주길 원한다. 이들 사이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이들이 벌이는 싸움을 듣고 있으면 이질감이 든다.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상대가 하는 말에 대답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응이나 반박에 가깝다. 각자의 주장과 생각을 계속 얘기할 뿐, 남의 말을 이해하려 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이런 집단적 독백이 터무니없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족이 오열하고 기절해 쓰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주절대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우스꽝스럽다. 모두가 자신만의 세상에 눈이 멀어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희극이면서 비극인 이 작품의 특징이다.자신의 어깨에 강제로 올려진 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엘하르트는 떠난다. 그러면서 9살 많은 이혼 여성과의 사랑을 선언하면서 온 가족을 충격에 빠트린다. 엘하르트는 가족들이 자신에게 의탁한 욕망을 거부한다. 그
지역 미술관은 그 도시의 얼굴이다. 이곳에 걸린 작품을 보면 지역 고유의 예술 감수성과 그간 가꿔온 문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같은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할 때면 한 번쯤 도시 이름이 붙은 미술관에 들르는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은 지금 얼굴 없는 ‘무안(無顔)’한 도시다. 지역 대표 미술관인 부산시립미술관이 올해 미술관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대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이 미술관은 2016년부터 비만 오면 건물에서 물이 줄줄 새 작품을 전시하기 힘들었다. 온·습도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작품을 망가뜨리는 일도 있었다. 태풍이 오면 전시실 곳곳에 쓰레기통을 세워 빗물을 받고, 제습기로 물을 빼내야만 했던 부산시립미술관은 작가와 소장가들은 물론 다른 국·공립 미술관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작품 대여 기피 대상으로 통했다.지난해 열린 일본의 유명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엔 “국제적 망신거리”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혈세 20억 원을 들여 전시를 유치하고도, 당초 5개월가량으로 계획했던 전시 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