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 유홍준(명지대 교수)씨의 저서 「완당평전」(전3권ㆍ학고재ㆍ2002년 출간)에 무려 200여곳의 오류가 있다는 지적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다. 그가 누리는 드높은 대중적 명성의 바탕에는 학문적 깊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저간의 믿음과 평가를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불세출의 대가였던 그(추사 김정희)의 일대기를 한낱 미술사학도가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만용이기도 했다"거나 "내가 만신창이가 될지언정 완당의 전기는반드시 쓰여져야 한다는 사명감같은 것이 있었다"는 유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바아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이 갖고 있는 결함은 너무 많다. 고서연구가 박철상(은행원)씨는 한문학 동인지 '문헌과 해석'의 지난해 겨울호에 '완당평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을 기고해 34곳의 잘못을 1차분으로 하나하나 짚어냈다. '완당'이라는 호의 내력이 사실과 다르며 그의 그림 '모질도' 내용 등이 잘못 이해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씨는 5쇄를 찍는 동안 90곳을 수정했으나일부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완당평전」은 저자의 말처럼 추사 김정희가 워낙 대가여서 완벽을 꾀하기 힘든 현실적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러나 "수능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과 같은 심정"이라는 후기는 야심의 저작을 세상에 내놓는 학자로서 해야 할 말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겸양의 언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한 번 잘못 주입된 지식은 바로잡기 어렵고 설사 나중에 교정된다고 해도 대중의 뇌리에는 두고두고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씨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매우 높기에 더욱 그렇다. 유씨는 「완당평전」을 일대기로 써볼 생각을 해온 지 20년이 넘으며 완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1988년이라고 후기에서 썼다. 그러면서 완당을 논하기가 힘들어 박사학위 논문에서 추사 김정희론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완당평전」의 숱한 오류는 그러나 완당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면탈될수 없다. 일부의 잘못이 아니라 곳곳이 오류 투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기도 확신할 수 없는 사실과 평가를 임의로 또는 주관적으로 내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험이 있다고 소문난 약을 의사가 실험과정도 거치지 않고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하겠다. 유씨는 이 책의 처음부터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시작하는 그는 "추사체의 실체를 보면 매우 다양하여 어떤 글씨를 추사체라고 하는지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가 매우 어렵다"며 그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추사체의 난해함으로 예서 '잔서완석루(殘書宛石樓)'와 행서 '선게비불(禪偈非佛)', 해서 '판전(板殿)'을 들면서 "어떤 공통점도 찾아내기 힘들며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개성이 강한 글씨라는 점 뿐이다" 정도로 그친다. 서체가 다르니 외양의 공통점을 찾기 힘든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하다고 하겠는데, 학자인 만큼 거죽을 뚫고 들어가 초기와 말기를 관통하는 추사체의 본질을 파헤쳐주어야 한다. 그는 '추사체는 기괴한 글씨' '추사는 정통적인 순미(純美)ㆍ우미(優美)가 아니라 반대로 추미(醜美)를 추구했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는데, 추사가 이같은 평가를 듣는다면 선뜻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 괴이함이 그의 예술적 개성이자 높은 경지의 아름다움"이라는 정도로는 '20여년간 완당 관계자료를 구하고 해석해왔다'는 저자의 연구자세와 깊이를 증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책에는 400장에 가까운 도판이 실려 있는데,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추사의글씨가 과연 진품인지도 의문이 간다. 저자가 "시중에 나도는 추사 글씨의 9할이 가짜라는 말도 있을 정도"라고 언급하고 있어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유씨는 가짜까지 감별할 능력을 갖춘 눈은 매우 드물다면서 금석학의 대가인 임창순, 신호열, 유치웅도 추사 작품을 놓고 견해가 달랐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만약 이것이 '작품감정에서 내로라하는 대가들도 관점이 다르므로 설혹 책에 가짜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라면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되풀이 강조하지만그의 명성이 높은 만큼 한번 도판이 실리면 독자들은 진품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이 책에 실린 도판의 소장자는 사실상 진품판정을 받고 들어가는셈이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박씨의 지적에 대해 "(그가) 예를 들어 내가 한문에 무식한 것을 질책하기도 했는데, 기실 나는 미술사가이지 한문학자가 아니다"고 피해가려 한 점이다. 비장한 각오 아래 추사 평전을 쓰고자 한 학자에게 한문은 필수이자 기본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신호열 선생이 번역한 「국역 완당전집」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다"고 책임을 회피한 것도 떳떳하지 못하다. '만용' '사명감'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당차게 평전 집필에 나선 그가 선학의 오류까지 검증없이 그대로 수용했다면 정작 저자가 한 일은 무엇이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이다. 유씨의 저서에 오류가 많은 이유는 그의 학문적 연구가 세간의 명성을 따라가지못한 데 있다고 일각에서는 보기도 한다. 유씨는 1990년대 초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3권)를 써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는데,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닌 일반기행서였다. 다시 말해 어렵게 여겨지던 문화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대중적으로 넓혔다는 공로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나 이를 바탕으로 일약 유명인 반열에 오른 뒤 그에 상응하는 학문적 심화ㆍ확장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중적 명성에 걸맞게 그가 학술적 업적을 쌓아가야 한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이미 일부에서 '문화권력'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만큼 유씨 개인은 물론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학자적 자세를 굳건히 견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보면 박수근미술관 관장, 명지대 예술대학장 및 국제한국학연구소 소장,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 고간찰연독회 공동대표, 문화재전문위원 등 숱한 감투는 그의 학문적 활동을 제약하는 장애일 수도 있다. 차분히 공부하기보다는 대외적으로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