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미술제이다. 그만큼 세계현대미술을 이끄는 힘이 크고 쏠리는관심도 높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로 50회째(6월 14-11월 2일)를 맞는다. 1895년에 처음열렸으니 햇수로는 108년이 되는 셈이다. 더불어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가 생긴 게 각각 1951년과 1973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역사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비엔날레는 국제 미술제로는 보기 드물게 국가관을 운영한다. 한국도 1995년에 번듯한 국가관을 지어 한국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해왔다. 전통의 권위만큼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이 비엔날레를 문화적 패권주의의마당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그것이었다. 패권주의는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다. 강자나 대가가 모름지기 질서를 잡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판도 마찬가지여서 서방국들은 루이즈 부르주아, 한스하케 등 대형작가를 앞다퉈 '출전'시켰다. 백남준도 한국인이지만 독일 대표로 참가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인지 한국 역시 그동안 다소 튀는 작가들을 보내 시선을 끌려 애썼다.그 결과 세 차례 특별상을 차지해 한국인들에게 베니스 비엔날레가 친숙하게 다가오게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엔날레형 작가' '선물세트'라는 비판이 나왔다.극소수의 작가를 상품으로 포장한 뒤 단골로 내보낸다는 것이다. 쉰번째를 맞은 올해에는 이 비엔날레에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내부 진용이 바뀜으로써 서구 중심주의와 우월주의에서 벗어나려 한다는얘기다. 그 상징이 총감독으로 영입된 프란체스코 보나미(미국 시카고현대미술관 선임큐레이터). 한국관 커미셔너인 김홍희(쌈지스페이스 관장)씨는 "과거에는 총감독 1인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좌지우지됐으나 이번에는 6명의 큐레이터와 함께 공동으로 이끌어가는 체제가 됐다"면서 "행사가 분산적이고 파생적으로 치러질 것같다"고전망한다. 보나미 개인이 꾸미는 특별전 '무국적자'전도 조그맣게 진행된다. 한국관 전시 역시 이같은 변화에 발을 맞춘다. 스펙터클한 물량 위주의 작품이아니라 개념 중심의 작품들을 선보이겠다는 게 김홍희씨의 구상이다. 작고 잔잔한작품으로도 얼마든지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를 위해 황인기, 박이소, 정서영씨를 한국관 작가로 선정했다고 최근발표했다. 연령상으로 40대와 50대의 중간세대를 끌어들여 과거의 30대 중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한국 미술이 발전하려면 원로세대와 신세대를 잇는 이들이 힘차고건강하게 자리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숫자도 종전의 2인 틀을 깨고 한 명 더 늘렸다. 이 작가들은 '차이들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작업해 비엔날레 전체 주제인 '꿈과갈등'을 관철하게 된다. 현대 한국성으로 정체성을 일궈내 국제적 경쟁력과 한국적특성을 동시에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들은 국제주의와 지역주의의 위험한사잇길에서 내공을 쌓으며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는 보나미가 비엔날레 과제로 부각시킨 '국제주의 vs 지역주의'와도 맞아떨어진다. 이들은 한국관 안팎을 입체적으로 사용해 서로의 차이를 개념미술 코드로 통합하는 한편 엇박의 조화를 빚어낸다는 생각이다. 작품의 차이, 공간의 차이로 인한개성과 독자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조화와 소통을 은밀하게 모색함으로써 멋진 예술적스펙트럼을 연출하겠다는 얘기다. 건물의 투명벽을 이용해 베니스 해안풍경을 전시장 내부로 불러들이는 것도 한국관의 자랑이 될 것같다. 한국관은 프랑스관, 영국관, 독일관, 러시아관, 일본관 등 대형 국가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중심부에 위치한다. 다만 길가에서 다소 멀어 후미지다는 게 약점이라면 약점. 따라서 관람객을 끌어들일 비상한 연출력이 요구된다. 전시공간 파괴와 개념작가 선정 등 일련의 변화가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