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주의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송악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수려한 해안과 기암절벽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아름다워 제주의 희망봉(케이프타운)이라 불린다. 제주 서부관광의 중심지라해도 모자라지 않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절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다양한 사연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의 비경을 찾아가던 날,남제주는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제주를 여행하다가 남제주에 다다르니 해변가에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남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치솟은 그 웅장함에 이끌려 핸들을 돌렸다. 봉우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샛길을 따라 찾아간 곳은 안덕면 사계리 해안.봉우리는 395m 높이의 산방산이다. 산이라고 하면 봉우리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능선이 있기 마련인데 산방산은 봉우리뿐이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산방산이 봉우리뿐인 이유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다. 한 사냥꾼이 사슴을 쏘다가 잘못해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맞추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고 봉우리를 뽑힌 자리는 지금의 백록담이 됐다는 것이 그 하나. 다른 하나는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거인족 여신(女神) 설문대 항망이 빨래 방망이를 잘못 놀려 한라산 꼭대기를 치는 바람에 잘려나간 부분이 산방산이 됐다는 전설이다. 이같은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 산방산은 백록담의 둘레 크기와 같고 분화구도 없다고 한다. 한라산이 유연한 자태로 뻗어내린 여성스러움이 있다면 산방산은 우락부락한 남성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가파른 절벽 어느 곳을 둘러봐도 쉬이 오를 수 없어 보이는 산이지만 뒤쪽으로 힘들게나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산방산의 서남쪽 중턱 절벽에는 길이 10m,너비와 높이가 5m인 굴이 있다. 이 굴에는 절 하나가 만들어져 있어 산방굴사(山房窟寺)라고 한다. 이 굴사는 고려시대의 고승 혜일 대덕이 머물던 기원정사로 알려져 있다. 굴사의 천정 한복판에서는 수정처럼 맑은 물방울이 사시사철 눈물처럼 떨어지는데 물맛이 좋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형제섬,가파도,한국 최남단 영토인 마라도와 용머리 해안 풍경은 영주 12경의 하나로 꼽히는 비경이다. 산방산 줄기가 해안으로 뻗어내린 곳에는 바다를 향해 뛰쳐나갈 듯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용의 형상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용머리해안이 있다. 산방산 휴게소 계단을 내려가 10여분 거리에 있는 용머리 해안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제주에 표류해 들어왔던 네덜란드인 하멜의 기념비가 만들어져 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해안 절벽에 밀어닥치는 파도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용머리 해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 CF 촬영장소로 더욱 유명해져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 바로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용머리 해안에는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진다. 용머리가 왕이 날 훌륭한 형세임을 전해들은 진시황제가 호종단을 보내 용이 꼬리와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리자 피가 흘러내리고 며칠동안 슬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설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울적해지는 기분을 달래며 차를 돌려 송악산으로 향했다. 산방산에서 송악산까지는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4.6km 가량 펼쳐져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송악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왼편 바다쪽으로 다정한 형제처럼 나란히 서있는 형제섬이 자리하고 있다. 사계리에서 남쪽으로 5.5km 지점인 형제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과 섬의 개수가 바뀐다. 송악산 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몇 차례 소나기가 내리더니 형제섬에서 용머리해안 쪽으로 무지개 다리가 놓여지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송악산은 아흔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일명 99봉이라고도 불리며 100개에서 봉우리 하나가 모자라 맹수가 살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가장 높은 주봉의 높이는 104m.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 불리는 것이 어울릴 듯한 송악산 정상 근처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멀리 일본의 섬까지 볼 수 있다. 깍아지른 절벽과 높지는 않지만 거친 산세가 만들어내는 송악산의 경치가 빼어나다. 정상에서는 국토의 최남단인 마라도와 가파도,형제섬,우뚝솟은 산방산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데 인상적인 풍경이다. 주봉에서 서북쪽으로 펼쳐진 넓고 평평한 초원지대에는 방목해 키우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평화로움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 해안절벽에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들이 배를 감추기 위해 파놓은 군사용 동굴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4.3사건 당시에는 이곳의 섯알오름에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얘기도 있어 아름다운 경관이 간직하고 있는 슬픈 역사를 회상하게 된다. 글=정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