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이 완역됐다. 1945년에 완성된 이 저작은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을 계승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번역됐다. 문학과지성사가 기획하는 '우리시대의 고전' 시리즈 중 13번째인 「지각의 현상학」은 번역본 분량이 700쪽에 달하는 거작으로 역주는 류의근(柳義根) 신라대 철학과 교수가 맡았다. 류 교수는 대표적인 메를로-퐁티 전문가로 꼽힌다. 메를로-퐁티는 국내에는 흔히 장-폴 사르트르와 연관되어 인식되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파리 고등사범학교 동창으로서 같은 현상학자의 길을 걸었으며 2차대전 종전 뒤에는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해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메를로-퐁티는 한국전쟁에 관한 시각차로 사르트르와 갈라선 이후 내내 정치적 적대 관계에 서서 논쟁을 주고받는다. 사르트르가 철학,소설,희곡,정치평론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인데 비해 메를로-퐁티는 상대적으로 철학 영역을 고수한 편에 속한다. 류 교수에 따르면 「지각의 현상학」은 근대철학 고전인 헤겔의 「정신의 현상학」에 비견되는 명저로서 헤겔이 정신의 자기(self)운동과 그 구조를 상설하고 있다면, 퐁티는 신체의 자기체험과 그 구조를 기술한 것으로 대비할 수 있다고 한다. 헤겔이 의식 중심주의로 대변되는 근세철학의 완성본이라면, 메를로-퐁티는 그 완성의 역전판이라는 것. 그러니 메를로-퐁티의 이 저작은 의식 일변도의 서양철학을 신체로 되돌려놓은 신기원을 이룩한 역작이라 함이 류 교수의 지적이다. 메를로-퐁티와 현상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요 용어 해설란을 마련했다. 713쪽. 3만4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